겁나 흔한스토리






[아카카게] 애(哀)





*




"혼인하라는 명이옵니다."


"........"



아카아시가 눈 앞에 있는 카게야마를 바라보았다. 낮게 가라앉은 아카아시의 기분이 턱이나 좋아보일리 없었다. 제 2황자 오이카와가 아끼는 막내동생을 인질로 잡기 위해서 이런 짓까지 해야하는 것일까. 파란 눈동자가 공포에 질려 떠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제 주군인 보쿠토 코타로는 겉보기에는 가볍고 단순하지만 괜히 이 나라의 권력 2순위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였다.



"황자전하."


"...........말씀을 놓으시지요. 이제...제.."



제 형을 닮아 자존심이 강하다던 막내황자가 입술을 깨물며 덧붙였다. 지아비가 되실 분인데. 그 말을 내뱉는 카게야마의 입술은 더없이나 곱지 못했다. 자존심에 금이라도 간 것일까. 지금 유일한 제 편이라고 할 수 있었던 2황자 오이카와는 변방으로 밀려나 제후나 되어야할 신세이니. 혹시 모를 반란을 막기 위한 포로나 다름 없는 위치. 주군이 무어라 했던가. 제 멋대로 가지고 놀아도 된다고 했던가. 아카아시가 아무말 없이 제 앞에 고개를 숙인 카게야마의 볼을 붙잡았다. 영특하다 했다. 그러니 모를리 없을테다. 제 위치를.



"영특하시다던 황자께서 위치를 모르시진 않을꺼라 생각합니다."


".........."


"어차피, 제겐 집안에서 거부하는 정인도 있으니 그리 이름없는 안주인으로만 남아계시지요. 부인."



아카아시가 냉담하게 말을 내뱉었다. 카게야마가 눈을 질끈 감았다. 아카아시의 정인은 궁내에서 제법 유명했다. 긴 흑발의 아름다운 여인이라 했다. 광대라 하던가. 그래서 집안에서 큰 반대를 한다고 들었다.  어차피 제 운명일터. 인형이 되는 것 쯤이야. 말을 잘 듣는 건 언제나 카게야마에게 익숙한 일이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인형처럼 있으면 된다 그리 생각했다.




*


*

*




"이건 무엇입니까?"


"....부인께선 활을 좋아한다 들었습니다. 저도 활을 좋아하니 양궁장이 따로 집안 뒷편에 마련되어있습니다."


"......"


"그러니 심심하거나 그러실때 한 번 해보라 구해온 것입니다."



아카아시는 카게야마를 죽지 않을 정도로 배려했다. 외로움에 사무쳐 투기에 미친 아내가 되지 않도록 배려했다. 카게야마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아카아시는 언제나 그랬듯 밥을 같이 먹었다. 허나 밥상머리 위에는 기본적인 말들만 오갈 뿐, 그 어떤 말도 오가지 않았다. 아카아시가 나간 방문을 바라보다 카게야마가 헛웃음을 지었다. 세간에는 부인을 더 없이나 아끼는 애처가로 소문이 났다. 집안에도 자주 들어오며 늘 함께 있는 부부. 적대적 관계에서 피어난 사랑이라 그리 말하고 다녔다. 낭만적이라며.



"......."



카게야마가 웃음을 터트렸다. 외롭지 않으면 거짓말이라 할까. 그래. 거짓말이다. 외롭다. 언제나 외로웠다. 그러나 아카아시를 만난 이후부터는 외로움이 더욱더 사무쳤다. 혼자 살아가면 된다 생각했다. 저를 아끼는 동생이라 거짓말하는 제 형과 그 사이에서 말이 되어야 했던 저. 권력을 놓아버리고 싶어도 놓지 못했다. 아무 권력도 없는 허울 뿐인 말. 막내 황자는.


가끔 저리 아카아시가 제게 다정하게 대해주면 카게야마는 문득 궁금해지곤 했다. 이런 저에게도 이리 다정하게 대해주는데. 제 정인에게는 얼마나 잘 대해줄까. 그런 아카아시의 형식적인 배려조차 카게야마에게는 익숙치 않은 것이었다. 저를 기른 유모나 알법한 제 취미를 안다거나, 먹지 못하는 음식들을 걸러내주는 그런 사소한 배려에 카게야마는 어쩔 줄 몰라했다.


사랑을 받지 않았으니. 그런 단순한 배려에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모르는 것 뿐이었다.



"...........하아."



미울까. 미울까. 아니. 밉지 않다. 이런 나를 형식적인 부인으로나마 자리에 앉아있게 해주고, 보호해주는 것이 아닌가. 제가 아카아시의 부인이라는 명칭조차 없었더라면. 저는 이미 형장의 이슬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죽음은 언제나 카게야마에게 익숙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죽는 건 무서웠다. 그러나 황위계승권을 가지고 태어난 순간 제 목숨은 외줄 타기를 하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었으니. 



"...........아."



침울함에 기분을 달래러 문을 조심스래 열었다. 어여쁜 정원이 있었다. 창 밖 너머로 환하게 웃고 있는 제 지아비이자, 남편인 아카아시가 보였다. 정원을 거닐고 있었다. 여인의 검디 검은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다정하게 속삭이고 이마에 입술을 맞추는. 그렇겠지. 사랑하지도 않은 아내를 맞은 아카아시의 심정이 어땠을까. 카게야마가 조용히 웃었다. 상상조차 가지 않는 일이다.  너무나 미안해서.



"...........보고 있는 것만도 이렇게 힘든데."



얼마나 나를 싫어할까. 카게야마가 고개를 들었다. 미안하고 미안했다. 


'정원이 있습니다.'



당신이 아끼는 작약으로 채운 정원입니다.



아카아시는 잠든 제 방문 앞에서 그리 다정히 속삭였다. 제 연인에게 하는 말이겠지. 이 안방도 저 여인을 위한 것이였구나. 그제서야 깨닫는 사실이 몸에 박힌다. 이 모든 것은 나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카게야마가 그 아름다운 한쌍의 연인을 바라보다 천천히 문을 닫았다. 아름답구나. 저도 그리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그리 빛나게 저를 사랑해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별로 바라는 것은 없습니다. 다만..'



이름 없는 부인으로 그리 사시지요, 그 말을 듣고도 외롭지 않았다. 아니. 외로움에 익숙해서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행복의 진실을 보고 나니 조금은 부러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런 행복을 질투하는 자신이 너무나도 절망스러웠다.



이부자락에 검은 얼룩이 떨어진다. 아. 그렇구나. 나 당신을 사랑하기라도 한걸까. 숨이 막혀온다. 부러웠구나. 행복해서 부러운 게 아니였다. 그냥 저도 한번만 듣고 싶었던거다. 그 목소리를. 다정하게 불러주는 그 목소리를 듣고 싶었던 거다. 




*




"거짓말인 걸 압니다. 부인. 왜 굳이 2황자의 누명을 덮어쓰시려 합니까."


".........거짓말이 아닙니다."


"...............적국과 공모해 황위를 찬탈하려는!!"


"형님께서는 우연치 않게 걸려든 것 뿐입니다. 적국에 기밀을 전달한 건 저입니다."



당신의 책상에서 빼냈습니다. 


제 말에 아카아시의 표정이 짜증으로 일그러진다. 카게야마가 희미하게 웃었다. 아카아시가 입을 열었다.



"부인께서 이러셔도, 2황자님은 목숨만 살아남는게 다일테지요."


".........괜찮습니다."



어떻게 제가 가치있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이 것이 그 결론입니다. 형님을 살릴 수도 있는 방법이지요. 그 죄를 제가 뒤집어 쓰고 당신의 완벽한 세상에서 사라지는게 가장 가치있는 사람으로 써의 삶이었습니다. 카게야마가 말을 삼켰다. 아무말 없이 옥에 앉아 눈을 감고 있는 카게야마는 고고해보여서 아카아시는 짜증이 치밀어올랐다. 



"왜 그리 멍청하게 구십니까?"


".........."


"제 집 안에서 그저 관상용 화초처럼 앉아계시기만 하면, 그 희미한 목숨 붙들고 계실 것을."



아리다. 카게야마가 웃음을 지었다. 죽는건 무서웠었다. 허나 이 세상에 남기고 가는 것이 없으니 마냥 그리 두렵지 만도 않은 것이 신기했다. 



"그 곳은 제 자리가 아닙니다."


"그럼 어디가 부인의 자리입니까? 사형장이라도 된단 말입니까."


"..............거기가 가장 근접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자리는 없다. 그 관상용 화초가 되어 앉아있던 자리도 당신은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자리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였다. 작약향이 아릴듯이 희미하게 풍긴다. 이리도 향기로운 향은 제것이 아니었다. 피비린내가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인형이 되어 살고자 했으나 내 것이 아닌 자리는 숨막힐 듯 괴로워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 어디도 없는 세상.



"어차피 그 자리는 제 자리가 아니였지 않습니까?"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당황한 당신의 얼굴이 제법 웃겼다.



"그러니 떠나는 것 뿐입니다."



떠났는데, 돌아갈 곳이 없다면. 사형장이 제 자리가 아니겠습니까.





*


*

*




".....적국에 기밀을 팔아 넘긴 죄 및 황권을 능멸한 죄 그러니 황자 카게야마를 사형에 처한다."



제 죽음은 아름답지 못하나 보다. 카게야마가 목에 걸리는 밧줄에 천천히 눈을 뜬다. 제 형도 말을 잊지 못하는 표정으로 저를 바라본다. 왜. 도구였다면서. 그리 슬프게 계십니까. 카게야마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저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왜 그리 슬퍼하십니까. 아파하지 마세요. 그럼 제가 편히 갈 수 없으니까. 카게야마가 알 수 없는 표정의 아카아시를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뺏어서 미안했습니다. 그러게요. 사람들의 자리를 빼앗기만하는 나는 왜.  태어난 것일까요. 카게야마가 웃었다. 처연하게 짓는 웃음에 아카아시가 고개를 돌렸다.



"마지막 할 말은?"


".........."



할 말이라.


내 것이 아닌 이에게 말해 무엇하리.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미안해 마시지요. 제 죽음은 당신이 생각한 것 만큼, 그리 대단하지 않으니.





*






한마디 해도 되겠습니까.


...............


그 아씨와 혼인하시지요.


죽을 부인께선 쓸 때 없는 말을 하십니까.


그저- 단지.





행복하시면 좋겠습니다. 아카아시.


제가 드릴 수 없는 행복을, 누리세요. 카게야마가 뒷말을 삼킨 체 희미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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