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데헷. 짝사랑 너무 좋음


들어주세요.


*



아카아시는 후천적 컬러버스였다. 사실 컬러버스가 아닌 기억은 아주 희미해서 그냥 색이 어땠는지는 잘 몰랐지만 그래도 대충 느낌은 알고 있었다. 흐릿하디 흐릿해서 눈에 잡힐 것 같지 않은. 그게 그저 다였다. 컬러버스가 된 삶에 그리 문제도 없다고 생각했고, 신호등이나 색깔을 구별해야하는 일들 말고는. 그래서 아카아시는 그렇게 후회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그 희미한 색깔의 아름다움을 막연히 이랬겠거니, 라고 상상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으니까.



".......아카아시?"



손에 들린 배구공이 떨어진다. 아카아시? 제 이름을 부르는 1학년 동기의 말에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를 타고 들어오는 수십가지, 수백가지 색의 향연이 퍼져나간다. 황금빛 금안을 타고 퍼져나가는 그 수많은 색들은 미칠 듯이 아름다워서. 마치 꿈이라도 꾸는 것 처럼.  손을 뻗어 잡고 싶었다. 꿈일까. 아니면 현실일까. 기적처럼 맞이한 확률은 모두 당신을 가르키고 있었다.



"안녕! 나는 보쿠토 코타로야."



그렇구나.


이 모든 색깔은, 이 모든 아름다운 색들은 당신에게서 나온거구나.


아카아시가 붉어진 얼굴로 제 가슴을 부여잡았다.



*


*

*



"아카아시 매정해!!!"

"종반 서브 미스는 못 봐드립니다."

"아카아시! 타이밍 중요하잖아!!!!!!!"



보쿠토가 찡찡거리는 것을 흘낏 바라보던 아카아시가 수건으로 땀을 닦아낸다. 기적같다고 생각했었다. 기적일까. 영원히 회색빛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에 비하면 저는 운이 좋은 거겠지. 그리 생각해야지. 목이 탔다. 드링크를 꿀꺽꿀꺽 삼킨 아카아시가 한숨을 쉬었다. 



"아카아시! 어느 통에 새로 만든 드링크 담겨 있어?"

"왼쪽입니다. 오른쪽은 빈통..."

"...없어!!"



잘못된 아이스 박스를 연 보쿠토가 소리쳤다.



"푸하하. 보쿠토 오른쪽 왼쪽 구분 못하냐?!!"

"하지만 색깔을 모르니까 헷갈리는 걸!!"



빌어먹을. 아카아시가 쓰게 웃었다. 보쿠토의 어깨를 팡팡 두들기며 웃음이 터지는 코미에게 드링크를 꺼내달라 보쿠토가 부탁했다. 보쿠토상도, 아마 컬러버스일 것이다. 아니. 컬러버스라고 했다.  제게 색을 가져다준 아름다운 이는 컬러버스다. 그렇다는 건 . 저는 그의 운명이 아니였다. 저의 운명은 그이지만, 그의 운명은 제가 아니다. 처음 보쿠토상이 컬러버스였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얼마나 충격을 먹었는지. 지금은 상상도 못할정도였다.


차라리 일반인이었으면 상처를 덜 받았지 않을까? 일반인이였더라면 그저 보쿠토상이 사랑하는 것도 덤덤하게 지켜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면 작게 희망은 있을꺼라 착각하며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제가 같이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은 보쿠토상에게 여자친구가 생기지 않겠지하거나. 그런 바보같은 희망들. 하지만 컬러버스라는 건.  아카아시가 눈을 감았다. 머리가 어지럽다. 



"......하아."



보쿠토상도 느끼겠지. 제가 느꼈던 그 황홀한 감정을. 그리고 그에게 나타난 운명에게 빠지지 않을까. 아카아시는 장담할 수 있었다. 그는 사랑에 빠지겠지. 그래 그게 가장 아카아시를 좀먹었다. 제가 넘 볼 수도 없는 운명의 상대가 있다는 사실이 아카아시를  작은 용기조차 낼 수 없을 정도로, 우울하게 만들었다. 


처음엔 화가 났다. 1학년 때는 화가 나 더 그에게 모질게 굴었다. 냉정하게 굴었다. 받아줄 수 없는 감정이라는 걸 알아서 당신에게 떨어지면 없어지지는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아카아시는 부주장!'

'...........보쿠토상.'


아카아시는 나한테만 모질어. 


'하지만 나는 아카아시랑 친해지고 싶은걸!"


보쿠토가 환히 웃는 웃음에 아카아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혼자 버리겠다고, 버릴 수 있다고 다짐해놓고 금새 약해져버리는 자신이 너무나도 못나서 아카아시는 혼자 서러움을 삭히곤 했다. 그러게 하필 좋아하는 운명의 상대가 눈치도 없고, 같은 동아리 선배인데다가, 동성.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또 다른 운명이 있는 컬러버스. 고백할 수나 있을까. 아니면 사귀자는 건 어림도 없으니까 좋아한다는 것만 알아달라고 할 수나 있을까.


용기는 개뿔. 날리가 없잖아.



"아카아시!"

"예. 보쿠토상."

"우리 회식하자~!!!"



부비 얼마 없어요. 작게 말하는 제 말에 보쿠토가 눈을 커다랗게 뜬다. 헐..누가 먹었어? 코노하가 아카아시의 어깨에 팔을 올리며 소리쳤다. 회식 얼마전에 연달아 세번하신 보쿠토 주장님 덕분이저? 보쿠토가 충격먹은 표정으로 아카아시와 코노하를 바라보았다. 웃겼다. 귀여웠다. 콩깍지가 너무 심하게 씌였어.



"이번에 본선 진출하면 부비 또 나오니까 . 그때 회식하면 됩니다."

"헤이헤이헤이!!!!!!!!"



좋았어!!!!!!!!! 1 차 목표는 본선 진출이다아아!!! 금세 기분이 좋아진 보쿠토가 소리쳤다. 중증이야. 이것도. 아카아시가  붉어진 얼굴을 애써 숨기며 따라 웃었다.


좋아해요.


말할 수 없는 말을 속으로 삭히며.




*




그를 좋아하고 운 적은 없었다. 서러워도 운 적은 없었다. 서러우면 귀신같이 달려와 기분을 맞춰주거나, 제가 그를 좋아하기만 해도 벅차서 울고 싶을 정도로 슬플 일은 없었으니까. 아카아시가 조용히 보쿠토를 바라본다. 젠장. 욕짓거리를 내뱉고 싶어졌다.



"아카아시...나 색이 보여."



보쿠토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리고 아카아시는 눈을 감았다. 평생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적어도 제가 그의 곁에 있을 때까지만. 그 때까지만이라도 나와주지 않았으면 하고 바랬다. 제발. 하지만 신은 야속했다. 야속하다 못해 잔인했다. 아카아시는 울고 싶어졌다. 그 아름다운 소녀에게 가는 발걸음이 미치도록 야속해서 가슴이 아팠다. 가지마요. 아카아시가 애써 목구멍까지 나온 말을 삼켰다. 안돼. 안돼. 말하면 안돼.


하지만 잡고 싶다. 


그렇지만 안돼.

당신은 보고 있겠지. 그 아름다운 색들을. 어릴 적 처음 맛보고 잊어버린 것 같은 그 추억 같은 아름다움을.


보쿠토상. 


색을 알게되면 모든 것이 신기합니다. 후천적으로 컬러버스가 된 저라도 잘 알고 있어요. 그 색이란 것이 얼마나 아름답단 걸.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도, 그저 바스러져가는 낙엽도,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피어난 작은 풀마저 아름답게 보이게 된단 걸. 그렇다면 당신도 알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사랑스럽게 보이는지.


아카아시가 눈을 천천히 떴다. 그리고 쓰게 웃었다. 눈앞이 흐려진다.  응어리진 감정이 투명하게 흘러내려 땅에 떨어진다.



"............"



그래도 눈이 부실정도로 사랑스럽다. 긴 생머리의 소녀를 보고 어쩔 줄 몰라하는 당신이 그래도 사랑스럽다. 아파서. 아파서 죽어버릴 것 같은데. 사랑스러워서 미칠 것  같다. 당신도 알겠지. 얼마나 사랑스럽게 보이는지. 사랑스러워서 소중히 하고 싶고, 이런 아름다운 세상을 내게 보여준 그 사람이 얼마나 고마운지.  푸른 하늘 같은 당신이 내게 준 것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아서 늘 고마웠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지만, 당신은 네가 아니다.



"보쿠토상."



아카아시가 조심스럽게 뒷걸음질을 쳤다. 아니 도망쳤다. 아프니까. 보고 싶지 않아. 그게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아니까. 아무말도 할 수가 없어.  그게 얼마나 사랑스럽고 예쁜지 아니까. 나는.


아.


당신이 내게 보여준 세상은 아름다웠다. 그가 행복하기만 하면 된거지. 뭘 더 바래. 아카아시 케이지. 정신차려. 네 운명이라고 해서 보쿠토상이 나를 바라볼꺼라고 착각한거야? 착각하지마. 아카아시가 주저앉았다. 울고 싶다. 울어도 되지 않을까.  이때까지 울지 않았으니까. 한번쯤은. 울어도 괜찮겠지? 울고 싶어. 사랑받고 싶어. 미안해요. 이런 아카아시 케이지라서.


당신의 유능한 후배가 아니라서, 당신의 호의 하나도 착각하는 바보같은 아카아시 케이지라서 미안합니다. 사실 나 당신에게 잔소리 할 정도로 냉정하지 않아.


하지만, 나 당신을 통해 본 세상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당신을  사랑할 수 밖에 없었어.



".....흐....으........."



너무나도 서러웠다. 그래도  소리내어 울만큼 제 사랑이 그렇게 당당하지는 않아서 아카아시는 눈물을 쏟았다. 남몰래. 




*




열여덟의 아카아시 케이지는 제 사랑을 포기했다.


부드러운 하얀 꽃잎도, 바스러져 가는 붉은 낙엽도,  바다처럼 푸른 하늘도 모두 사랑스럽게 만들어준 사랑스러운 사람에 대한 고마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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