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새드

*오이카게 한조각의 기억, 오이카와가 기억을 잃어간다의 외전 격입니다. 앞 편을 읽고 오시는게 좋아요!

*필력상승용

*세상의 이런일이 나왔던 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각색한 글입니다.




한조각의 기억




오이카와는 항상 요리 재료 2인분을 샀다. 오이카와는 멘션에서 홀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그는 매일 아침 조깅을 하며 마을 주민들에게 무언가를 물어보는 것이 일과였다. 그 질문의 내용은 대부분 카게야마라는 남자를 본적이 있냐는 것이였고, 누군가 그에게 카게야마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다면 오이카와라는 남자는 멘션 앞에서 혹은 버스정류장에서, 아님 집에서 카게야마가 좋아하는 카레를 만들고 한없이 기다리곤 했다.  그렇게 기다림에 지쳐 쓰러져 잠드는 것이.


점점 어려지는 오이카와의 하루였다.




*




오늘은 조금 달랐다. 스물두살의 어느날이였던 모양이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얼른 다녀올께요.'


얼른 다녀온다더니 해장국을 만들어오나? 아니면 무를 심어서 재배하나? 오이카와가 뾰루퉁한 얼굴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어제 대학 리그에서 우승을 했고, 선배들이 입에다가 병째로 들이 부었고, 맛이갔고... 토비오에게... 오이카와가 퀭해진 얼굴로 물을 삼켰다. 속이 그렇게 아프진 않았지만 어제 한 짓을 생각하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미안해. 토비오짱. 빨리오면 미안하다고 빌께. 카게야마의 멘션인가? 그런 것 같다. 토비오짱이 데려왔나? 오이카와가 푹신한 이불을 끌어안고 아이폰의 잠금을 능숙하게 풀었다.



"응..?"



이게 뭐야. 낯선 휴대폰이다. 아이폰인 것 같긴한데, 옆이 이렇게 둥글둥글했었던가? 토비오짱의 휴대폰인가? 잠금 번호는 분명 제 휴대폰인데? 오이카와는 라인 상태창에 떠있는 오이카와 토오루라는 이름을 확인하고 나서야 오이카와는 맘껏 휴대폰을 만지기 시작했다. 뭐지. 기억이라도 잃은거야? 대학 톡방도 없다. 이거 뭐지? 제일 위에 떠 있던 이와이즈미와의 메세지 방을 들어간다. 별 내용은 없다. 그저..... 결혼?!!



"뭐야? 뭐야? 결혼 뭐야?!!!"



오이카와가 당황한 얼굴로 이와이즈미의 상태창을 들어간다. 아리따운 여성분이었다. 감자 이와짱에게 부인이 생기다니. 그럼 뭐야? 혼전임신...이 아니라?! 오이카와가 이와이즈미의 프로필을 확인한다. 32살?!!!! 오이카와가 비명을 질렀다. 조용한 멘션에 오이카와의 비명이 울려퍼진다. 멍하니 TV를 바라보던 오이카와가 황급하게 놀란 듯이 화장실로 뛰쳐들어가 거울을 확인했다. 으에?!! 오이카와가 다시 한번 비명을 질렀다. 거울 속에는 제법 늙어버린 자신이 서 있었다. 약간의 잔주름과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 적응되지 않은 자신의 얼굴을 만지작거리던 오이카와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차츰차츰 주위를 둘러보았다. 뭔가 틀려졌다.


당황한 오이카와가 걸음을 옮기기 전. 습관처럼 수납장을 열었지만 남아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칫솔 두 개, 식기세트  두 개, 잔뜩 쌓여진 카레 봉지 그리고 밥. 오이카와가 소파에 털썩 앉았다. 텔레비젼 옆에 놓여진 사진. 32살의 저는 토비오와 함께 살았던 모양이었다.  신발의 사이즈와 옷의 사이즈는 각각 두 개씩. 온통 자신과 카게야마로 가득 찬 것 같은 방안. 그건 좀 안타깝다. 저렇게 행복해보이는 기억은 기억해도 좋을텐데. 오이카와가 목덜미까지 이불을 덮었다. 둘이 사는 건가? 그럼 좋겠다. 그렇지만 이 집은 뭔가 비어보이는 걸.


무언가를 고민하던 오이카와가 휴대폰을 들었다. 전화부를 쭉 내려 익숙한 번호 앞에서 망설였다. 전화해볼까? 통화버튼을 누른 오이카와가 잠시 기다렸다. 연결음이 들린다. 끊기지 않는 연결음에 오이카와가 종료버튼을 눌렀다. 이내 배경화면으로 돌아오는 휴대폰에 오이카와의 표정이 미묘했다.


'오이카와상?'


대답이 없던 휴대폰을 바라보던 오이카와가 이번엔 이와이즈미의 번호를 눌렀다. 이와짱 번호 그대론가보네. 이번 연결음은 그리 길지 않았다.



[어이. 오이카와냐.]


"이와짱."



이와짱 결혼했어? 제 물음에 이와이즈미가 뭔 개소리냐며 투덜거리다 무언가를 깨달은 듯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래. 수화기 건너편의 이와이즈미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렇구나. 이와이즈미의 행동에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에게 전화를 하는 것이 최근래의 일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오이카와가 널찍한 창문 밖. 하늘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그럼 토비오짱 어디 갔는지는 알아?"


[..............]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는거야?"



수화기 건너편의 이와이즈지미가 한숨을 내쉬었다. 오이카와. 또 다 떼버린거야? 이와이즈미가 일그러진 목소리로 제게 물었다. 뭘 다 떼버려? 이번엔 무슨말인지 도저히 모르겠어서 오이카와가 되물었다. 이와이즈미가 쓰게 웃었다.



[죽었어. 그 녀석.]



네 품에서.




*


 

*

*



오늘은 스물네살의 오이카와다.


오이카와에게 카게야마란 어떤 존재냐 묻는다면, 무어라 대답해야할까. 그저 이미 섞여버린 어느 물감과 같았을 것이다. 이미 떨어트려내기에도 늦은 이미 무언가의 색으로 변해버린 물감. 그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기에 더욱 더 슬픈 것. 이제 오이카와에게 카게야마가 없는 세상은 사랑하는 이가 없는 세상이 아니라 더 이상 제 몸의 일부분이 없는 세상이다.


[카게야마는 죽어가.]


미래의 제가 전했다던 메모의 내용이 머리에 가득했다. 기침을 토하는 카게야마의 목소리를 애써 듣지 않기 위해 오이카와가 영화의 볼륨을 키웠다. 맥없이 리모콘의 볼륨버튼을 누르는 오이카와의 뺨에, 묽은 눈물이 흘러내린다. 아마 자신은 이 영화를 수십 번도 더 봤겠지. 


[상상도 못 하실거에요. 하루 종일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싶어요.]


[머리를 깍는다든지 젤라또를 먹는다든지 하는거요..?]


오드리 햅번이 그레고리 펙에게 입을 열었다. 하루 종일 하고 싶은 것이라. 이내 오이카와가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카게야마의 기침소리는 먿을 기미가 없었다. 정말, 너는 죽어가고 있는 거야? 토비오. 오이카와가 눈물을 삼켰다. 그럼 네가 없는 세상을 어찌 살지? 같이 맞는 아침 햇살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행복감에 겨웠는데. 잃어가도 좋았다. 더이상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았다. 오늘은 너무나 행복했고, 네가 있는 미래도 역시 그러할 것이라 믿기에.


나는 사랑하는 네가 함께 있어, 너무도 행복했는데.


오이카와가 얼굴을 감쌌다. 그리곤 오열했다. 소리를 삼키며, 혹시나 카게야마가 듣지 못하게. 손 사이로 흩어지는 눈물이 카펫을 적신다. 기억이 없던,있던 내가 너를 사랑한 사실은 변치 않았다. 조금은 나이가 들어버린 네 얼굴도 충분히 사랑스러웠으니까. 어떻게 살아가던 나는 너를 사랑했다. 그 아름다운 것들이 흑백으로 변해 버릴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러면 차라리, 잊어버리는 것도 좋은 것 같아. 오이카와가 눈물 젖은 얼굴로 영화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작별을 하죠? 아무 말도 생각이 안 나요.]


[애 쓰지 말아요.]


그레고리 펙이 오드리 햅번에게 입을 연다.



"오이카와상."



많이 야윈 네가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왜 이리 말랐어. 내 사랑. 머리가 새하얗게 변했다. 그저 나는 너를 품에 안아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휘감았다. 품에 안기는 몸은 제 체구에 비해서 한 없이 작아서, 오이카와는 왈칵 울음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사랑해. 사랑해. 토비오. 네 이름을 중얼거리는 나에게 파랗게 질린 네가 웃었다. 너무나도 환하게 웃었다. 마치 죽어버리기 직전의 꽃이 온 힘을 다해, 피어나는 것만 같았다. 그 꽃이 안녕은 행복하게 해주리라 그리 다짐하듯. 결국.



"사랑해요."



마른 회색빛의 꽃 같던 네가 네 품에 쓰러진다. 


카게야마가 잡은 손의 힘이 서서히 풀어져간다.


오이카와가 카게야마를 끌어안으며 오열했다. 점점 식어가는 카게야마의 이마에 제 이마를 맞댄 오이카와가 웃었다. 그의 뺨을 타고 흐른 눈물이 카게야마의 눈을 적신다. 토비오. 과거의 그 기억은 너를 위한 것이었어. 하지만 너가 없어진 세계에서는 더 이상 필요가 없어. 그러니까.


이제는 나는, 영원히 네가 살아있는 세계에서 살아가고 싶다.




*


*

*



이젠 카게야마와 농익은 사랑을 했던 서른의 오이카와다.


아침햇살로 족했던, 서로를 끌어안으며 사랑을 고백했던 나날로 족했던 오이카와다. 오이카와가 손에 들린 진단서를 구겼다. 앞에서 카게야마가 오열하고 있었다. 왜 숨긴거야? 카게야마가 눈물 젖은 얼굴로 오이카와를 올려다보았다. 오이카와상도 아프시잖아요. 카게야마가 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피했구나. 그래서 그렇게 애써 자신을 피했던 거구나. 



"토비오짱. 나봐."


".........싫습니다."



카게야마가 얼굴을 돌렸다. 눈물 젖은 얼굴이 못내 슬펐다. 오이카와가 카게야마의 이마에 제 이마를 맞대고 속삭였다. 



"나는 괜찮아."


".......오이카와상."


"그럼, 우리 오늘만 사랑할까?"



나는 더이상 내일이 오지 않아서 말이야. 토비오쨩. 


오이카와가 웃었다. 그 말과 동시에 얼굴을 숙이고 울던 카게야마가 고개를 들었다. 오이카와의 눈과 마주친 파란 카게아먀의 눈동자가 서러움으로 일그러졌다. 울지마. 토비오짱. 오이카와가 카게야마의 이마에 입맞추며 다정하게 그를 달랬다. 하지만 오이카와의 얼굴도 눈물로 젖어있었다.


카게야마와 농익은 사랑을 했던 서른살도, 


카게야마의 경기에 열광했던 스물여덟도, 


인생의 절정기를 맞이했던 스물다섯도,


카게야마와 사귀기 시작한 스물하나의 오이카와도.


그 모두 잊혀가지만 카게야마를 사랑한다는 것은 변치 않았다.  



"사랑해."



너무 흔한 단어지만, 이렇게 울고 있는데 말하는 건 미안하지만. 그렇게 말하던 오이카와가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하나 꺼낸다. 그 속에서 반지를 꺼내 카게야마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웠다. 그리고는 눈물 젖은 얼굴로 오이카와가 환하게 웃었다. 


항상 나의 오늘을 함께해줘.




내일이 올 수 없는 오이카와의 마지막 고백이었다.





*



'이와짱.'


나 이제 못 견디겠어. 오이카와가 수화기 너머에서 오열했다. 이와이즈미가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그럼 기억하지마. 이젠. 이와이즈미가 씁쓸하게 웃었다. 어쩔 수 없는 거겠지. 이젠 카게야마의 흔적이 사라진 집을 바라보다 오이카와를 불렀다.



"오이카와!"


"왜 이와쨩!!!"



이와짱, 진짜 많이 늙었네? 죽고 싶냐. 아니. 이와이즈미가 건내던 유우빵을 받아들던 오이카와가 이와이즈미에게 되물었다. 그럼 어른이 된 이와쨩. 토비오쨩도 온데? 커버린 토비오쨩도 보고 싶다. 그렇게 말하는 그는 아마도 열아홉의 오이카와인 모양이었다. 카게야마에 대한 사랑을 무럭무럭 키워나가던 수줍던 어린 날. 그렇지만. 이와이즈미가 입술을 깨물었다. 왠지 눈물이 날것만 같았다. 자신이 전혀 상관이 없다곤 하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쟤네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렇게 아파야하는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삼키던 이와이즈미가 애써 대답했다. 



"내일 와."



오이카와가 그 말에 환하게 웃었다. 내일을 기다리겠지. 저 녀석은. 


그렇지만 더 이상 오이카와에게 올 내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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