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 글. 옛날에 썻던거라 언제 다음편이 올라올지 장담 ㄴㄴ

*키워드: 사극, 고전

*썰과는 좀 다름!!

*잔인한 요소가 있을 수 있습니다.

*고증은 짬뽕입니다. 당나라+조선.






그림자의 봄




제국력 908년, 강희(鋼熙) 8년. 폭정을 참지 못한 대장군 이와이즈미 하지메와 재상 하나마키 타카히로, 친위대장 마츠카와 잇세이를 중심으로 한 측근들이 강희(鋼熙)제, 오이카와 토오루를 황위에서 폐위하다.


제국력 896년. 강희(鋼熙) 1년. 융정(隆貞)제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황태자 급천(及川)이 황위에 오르시니 굳셀 강에 빛날 희를 써서 강희(鋼熙)제라 한다.


제국력 895년, 융정(隆貞) 41년. 나라 안팎의 혼란이 극에 달하니, 융정(隆貞)제 말씀하시길 금지된 주술, 그림자를 부활시켜 황태자 급천(及川)에게 시행하라 일렀다.




*


*

*




신관과 무녀들의 안내에 따라 카게야마가 하얀 제단 위에 몸을 눕혔다. 흑색의 정갈한 옷으로 갈아입혀진 카게야마는 고개를 들어 제단의 천장을 바라보았다. 제단의 천장의 중심부에서는 동그랗게 구멍이 나있었다. 이게, 그 의식이라는 건가. 화려하게 장식된 제단의 조각들이 천장의 중심을 향해 치솟아 오를듯이 꿈틀거리는 것만 같다. 천장의 원으로 파란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던 카게야마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제 천한 신분으로 황궁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이 의식을 위해서였으니까. 딱히 후회는 하지 않는다.



'어둠에 태어난 동지의 아이 중, 또렷한 눈동자의 아이를 고른다.'



그림자. 황제의 또 다른 운명을 만드는 의식. 황태자인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옆 제단에 누워있었다. 백색의 옷을 입은 오이카와가 분주한 무녀들의 모습에 고개를 돌려 카게야마를 바라보았다. 저와 반대로 온통 까만 카게야마는 덤덤히 눈을 감고 있었다. 원래도 그리 생각했지만 참 무심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제 운명이 제게 복속되어 없는 목숨이 되는 것인데도. 어찌 그리 덤덤할 수 있는지. 무녀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해가 이 제단의 천장의 원에 자리 잡을 때 가까워 온다. 그 순간은 밤이 가장 길었던 카게야마가 태어난 날과 정 반대인 낮이 가장 긴 날, 하지의 정오. 



'아이가 자라, 가장 순수한 나이 열여섯에 도달하면 해가 가장 높은 하지의 날에 의식을 행한다.'



해가 천장사이로 조금씩, 조금씩 몸을 드리운다. 눈에 넘치도록 부신 해가 모습을 들어내고, 신녀가 조심스래 저와 카게야마의 손목에 상처를 낸다. 손목에서 흘러내린 핏방울을 하얀 그릇에 옮겨 닮았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가장 높은 하지의 날, 그러나 그날에 열여섯이 되는 소년인 카게야마. 눈부심에 오이카와도 눈을 감았다. 해가 가장 높게 뜨는 날. 해가 제단의 하늘에 들어가는 순간. 무녀들이 둘의 피를 섞는다. 



'그리하면 운명이 뒤섞여 동지의 아이는 존귀한 황제의 핏줄을 대신할 목숨이 될 것이다.'



눈부신 빛이 제단을 뒤덮었다. 그리고, 그날은 둘의 운명이 뒤섞인 날이었다.




*


*


*



오이카와가 화려한 옥좌에 앉아 턱을 괴고 칩입한 괴한들을 웃으면서 바라본다. 여덟명? 하찮다는 듯이 그들을 바라본 오이카와가 코웃음을 터트렸다. 칼을 든 검은 복장의 사내들이 오이카와를 바라본다. 오이카와의 곤룡포가 흔들린다. 기둥들이 옥좌를 향해 나열되어 있었다. 온통 붉게 장식된 근정전. 기둥에 매여진 호롱불이 반짝였다. 그 커다란 방, 가장 높은 곳에서 오이카와가 자객들을 향해 태연히 입을 연다.



"너희들, 열여덟에 무얼했지?"



오이카와가 자객들을 향해 수려한 얼굴로 웃었다. 온통 붉게 장식된 근정전의 안. 그 곳에 유일하게 홀로 남은 황제. 강희제. 가장 아름다운 황제라는 이명이 붙은 강희(强熙)제. 하지만 강희제는 미를 떠나서, 역대 황제들 중 가장 어린 나이에 왕이 된 것으로 유명했다. 


자객들이 오이카와에게 쇄도했다. 하지만 그들은 칼이 오이카와에게 닿기도 전에 잘려나갔다. 천장에서 나타난 카게야마가 자객들을 도륙하고 있었다. 죽어나가는 자객들. 바닥을 적시는 피가 흥건했다. 카게야마가 마지막 남은 자객을 향해 칼을 들어올리려 할때, 오이카와가 손을 올렸다. 그리고 카게야마가 고개를 숙이며 움직임을 멈춘다. 오이카와가 옥좌에서 걸음을 옮긴다. 움직이기 힘든 부상을 입은 자객이 하얗게 질린 안색으로 오이카와에게 칼을 던졌다. 하지만 칼이 도달하지 전에 자객의 눈을 파낸건. 오이카와가 먼저. 눈을 도려내어지는 고통에 자객이 비명을 질렀다. 터진 눈알에서 나온 피가 화려하게 놓인 자수마냥, 곤룡포에 묻었다. 웃음짓던 오이카와가 칼을 자객의 머리에 겨누며 입을 열었다.



"열여덟에 황위에 오르면 가장 많이하는 일은."



사람을 죽이는 일이야.


자객의 머리를 향해 오이카와가 망설임없이 칼을 내려쳤다. 피가 튄다. 이마에 박혀버린 검이 반짝였다. 온통 붉은 근정전이 죽음을 집어삼킨 것 마냥 피비린내가 났다. 오이카와가 얼굴을 쓸어내렸다. 재상인가. 이제 오이카와가 황제의 자리에 즉위한지 1년. 아직 제국의 위치가 자리 잡히지 않았고, 오이카와가 어린나이인지라 황제의 자리를 노리는 이들은 많았다. 오이카와가 죽어버린 자객의 얼굴을 살피다 카게야마에게 입을 열었다. 누구야. 카게야마가 대답했다.



"재상의 사병들입니다."


"............흐음, 내가 하나미키를 재상으로 올릴려는 수작을 알고 있었다라는 말이군."


"예. 이미, 도성의 암살자들을 회유했기에 사병들을 직접 이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 일단 당장, 이 버러지들을 썩 치우거라."



심기가 불편해진 오이카와가 입을 열자, 어디서 나타난 근위대들이 시체를 재빠르게 치우기 시작했다. 근정전들에 자객이 들이닥친 것만해도 벌써 수십번. 화가 난 오이카와는 근정전의 가구들을 모조리 빨간색으로 바꾸어버렸다. 피가 묻어도 티가 나지 않도록. 오이카와가 신경질적인 어조로 입을 열었다. 



"계획했던 건."


"아직, 일주일은 있으셔야 숙청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랄맞은 것들."



오이카와가 걸음을 옮겼다. 쉬어야겠어. 복도를 뚜벅뚜벅 걸으며 말하는 오이카와의 말에 카게야마가 고개를 조아렸다. 후원으로 가시겠습니까. 하나마키상에게 전달해 놓겠습니다. 카게야마의 말에 오이카와가 고개를 끄덕였다. 멀지 않아, 오이카와가 황궁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인 후원에 도달했다.

 

푸릇함이 가득한 잔디 밭, 우거진 숲 속. 커다란 연못과 흐드러지게 핀 꽃들. 연못 위에 떠 있는 작은 나룻배까지와 누각까지. 숲 속에서 나타난 사슴이 오이카와를 바라보다 연못의 물을 할짝인다. 나비가 가득한 후원의 모습에 오이카와가 입을 열었다. 봄이구나. 오이카와의 말에 뒤에 서 있던 검은 옷의 카게야마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까지 사람을 죽인 사람답지 않게 편안한 얼굴의 오이카와가 떨어진 꽃을 주웠다. 파란색이구나. 그리곤 털썩 풀숲 사이 몸을 뉘였다. 카게야마가 오이카와의 곤룡포에 풀물이 들까, 안절부절하지 못하자 오이카와가 잔소리 하듯 입을 열었다. 이미 피가 묻은 옷이야. 그 말에 할 말을 잃은 카게야마가 꾹, 입을 다물었다. 카게야마의 행동에 웃음이 터진 오이카와의 손에 들려진 꽃 덕분인지 들판을 노니던 나비가 내려앉는다. 



"토비오."


".......예. 폐하."



오이카와가 손짓으로 나비를 날려보냈다. 작은 나비가 애처롭게 날갯짓을 하는 꼴이 퍽이나 안타깝다. 마치 금방이라도 죽어버릴 것처럼. 오이카와가 고개를 젖혀 제 뒤를 지키고 있는 카게야마를 바라본다. 카게야마의 파란 눈. 그건 언제나 저를 향해 가득한 열망을 내뿜는 것. 지친 나비가 연못으로 내려앉는다. 날개를 젖어버린 나비가 이내, 움직임을 멈춘다. 물에 젖어버린 나비가 마치 저같아, 오이카와가 눈을 감으며 입을 열었다. 이리와봐. 오이카와의 부름에 카게야마가 무릎 한쪽을 꿇고는 고개를 숙였다. 검은 머리칼이 오이카와의 위로 흩어진다. 평화로웠다. 


넘치는 권력을 누리는 자리에 올라있었지만 지독히도 외로웠다. 지독한 어둠을 가진 체 살아가고 있었다. 죽여하는 것이 당연했다. 살아남기 위해 형제들을 죽이고, 홀로 살아남아 황태자가 되었다. 너라는 괴물을 만들어내면서까지 천하를 얻어야했다. 그러니.



"나를 버리지마."



열여덟의 황제. 손에 수 많은 피를 묻힌 남자가 서러움이 가득 담긴 얼굴로 눈을 떴다. 오이카와의 갈색 눈동자와 카게야마의 파란 눈동자가 마주친다. 그 말간 눈동자에 서로를 담았다. 하늘 같은 카게야마의 눈에는 오이카와를, 대지를 닮은 오이카와의 눈에는 카게야마가 담긴다. 오이카와에게 카게야마란 지독하게도 얽힌 운명이었다. 삶의 운명까지 뒤섞여버린 오이카와의 어둠. 그 자체. 그리고 제 어둠을 유일하게 받아줄 수 있는 사람. 다른 것은 몰라도, 그것만은 알았다.


오이카와가 망가지는 날은 카게야마가 망가지는 날이라는 걸.



못난씨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