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오래된 연인, (좀)쓰레기공,새드


당신을 미치도록 사랑했다. 하지만 이제는 지쳤을 뿐이야.




안 괜찮아요.




늦게 오시려나. 카게야마가 아무 말 없이 시계를 확인했다. 12시가 넘어가는 시간에 카게야마가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억지로 시작한 관계다. 당신은 나에 대한 증오를 무너트리기 위해. 나는 당신과 함께 있기 위해. 좋아한다, 싫어한다 어느 말 하나 오가지 않았던 이상한 관계. 제가 잘하는 것이라곤 배구 말고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노력했었다. 당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외우고, 좋아하는 노래를 알아보고, 좋아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싫어도 노력했었다. 노력했었어.


그러니까. 사랑이라는 미묘한 것을 하기 위해 노력했었다.


잡히지도 않았고, 잡으면 막상 희미해지는 것을 잡기 위해 그리도 나는 애타게 굴었다.  그러나 감정이란 무언가는 잡히지 않았다. 나중에는 어느새 체념할 정도가 되어버리곤 했다.  그리 노력했는데 잡히는 건 당신이 아니라 나여서 힘들었다. 노력하면 노력할 수록 목을 조르는 밧줄이 되어간다.



"..........생일 축하해."



카게야마 토비오.


카게야마가 책상에 얼굴을 묻으며 그리 속삭였다. 당신이 그리 말했었다. 철모르던 어린날 사랑을 약속하던 우리들. 꼭 생일은 같이 보내자. 하루가, 이틀이, 일년이, 해가 갈수록 내뱉었던 말들은 희미해져간다. 당신은 잊어버린 흔적들을 쫓고있었다. 바보같이. 그 흔적을 쫒아도 행복해지지는 않았다. 괴로움만이 더욱 차오를뿐. 숨이 막힌다. 왜 그럴까. 


오늘, 분명히 행복한 것도 같았다. 행복한거겠지. 사랑을 고백한다. 사랑을 나눈다. 오늘 하루를 맞이하고 내일도 맞이한다. 하지만 두려웠다. 무엇이?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들이 식어간다. 무언가 잘모르겠지만 기분이 저조하다. 카게야마가 차가운 식탁에 얼굴을 묻으며 생각했다. 왜 기분이 저조한걸까. 오이카와상이 오지 않아서? 하지만 많이 그랬는걸. 그런식으로 지나가버린 기념일들을 떠올리던 카게야마가 웃었다. 분명 처음은 그리하지 않았지. 그래. 시간이 지나서 왜 그리 변했냐 물으면 답은 하나였다.


왜 그래?


혹은,


어쩔 수 없어.


어쩔 수 없구나. 그렇구나. 바쁘겠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때마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어쩔 수 없는 사람일까. 난. 당신의 삶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제외되는 것은 내가 아닐까, 라는 그런 생각. 설령 진짜 당신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해도. 사과는 해야된다고 카게야마는 그리 생각했다.


흔해빠진, 드라마의 대사 같은 사과 말고.



"미안해, 회식이 있어서 어쩔 수 없었어, 같은.."



[띠링!]


[미안해, 회식이 있어서! 먼저 자고 있어! 토비오쨩.]


카게야마가 휴대폰을 확인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무슨 회식일까. 딱히 없는 걸로 아는데. 눈치 없다 그리 사람들이 욕했는데 당신과 살아가니 늘어가는 것은 눈치 뿐이다. 어떻게해야 당신의 기분이 나쁘지 않을까. 어떻게해야. 당신이 날 사랑할까. 그래도 회식이라고 해도 연인이 생일이라면 일찍 보내주거나 그러지 않을까. 카게야마가 잠시 생각을 하다 고개를 저었다.


분명 당신은 나보다 거기에 있을 당신의 팀원들이 더 중요하니. 뭐. 카게야마가 한숨을 쉬었다.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참 신기했다. 그렇구나. 화를 내면 내가 이상한 사람이된다. 그렇다고 화를 내지 않으면 그 일이 또다시 반복된다. 죽을만큼 아프고 힘들었어도, 내가 괜찮다고 했기에 괜찮은 일이 된거다.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진짜 어쩔 수 없다가 아니다. 그냥 그런 것이다.


단순히 나보다 그의 인생에 영향력이 큰 사람에게 밀린 것 뿐이다. 먹고 살 일이 걸릴 만큼 중요한, 혹은 그가 중요시 하는 어떤 것에 내가 밀린 것 뿐이다. 사실 그게 정답이다. 그게 가족이라면 이해라도 가지. 내 고민에 히나타가 무어라 잔소리를 했던 것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때 너는 어디간거야, 그러게, 저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스가선배도 넌지시 걱정하곤 했었다. 왜, 네 모든 걸 쏟아부어버리냐고. 사랑을 할때 나는 어느정도 남겨놓고 있어야 한다고. 근데 그게 안되는 것 같았다. 이 사람에게는. 그게 되지 않아. 나도 일찌감치 그럴 수 있으면 그랬지.


그러기에는 오이카와라는 사람이 제게 너무나 컸다.


제 어릴 적의 동경이자 우상, 그리고 연모의 대상. 



"바보같아. 나."



남들에게 싫은 건 싫다. 그리 잘 말하면서 이 사람 앞에서는 간이 콩알만해진다. 두렵다. 싫어할까봐 두렵고. 또 그 끔찍한 아픔을 겪어야하는게 싫다. 힘들다. 차라리 싸우는 것이 힘들지 않을 것 같다. 싸우는 건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이라도 들지, 이건 들지도 않잖아. 한 없이 기다리는데, 그게 너무나도 힘든데 당신이 들어와서 미안하다고 한마디 해버리면 끝나는 상황이 너무 지친다. 이제. 너무 힘들다. 카게야마가 눈을 껌뻑였다. 흐릿하게 변해버린 시야에 카게야마가 웃음을 터트렸다.


나 울고 있구나.


그럼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하지.  당신을 기다리면서.


당신이 약속에 늦으니, 약속시간을 잡지 않는다. 지켜지지 않을 껄 알기에. 기념일을 굳이 얘기해 주지 않는다. 챙기지 않을 걸 알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얘기하지 않는다. 상관쓰지 않을 걸 알기에.  차라리 죽을 만큼 아프기라도 했으면 신경써줄려나. 손목을 그어야하나. 카게야마가 그리 생각하다 눈을 감았다. 고인 눈물이 떨어졌다. 아. 한심해.  무슨 이렇게까지 생각하냐. 나. 이젠 자신이 없다. 이 상황이 또 오면 괜찮아요, 하고 넘길 자신이 없다. 그럴 수도 있지. 라는 말을 하고 속이 아픈 걸 참아낼 자신이 없다. 



[삐비빅-]



2시 반이다. 제 생일은 이미 지나가버렸다. 이제 돌아오지 않겠지. 멍하니 있던 카게야마가 고개를 들었다. 그는 제법 멀쩡해보였다. 



"왜 안 잤어?"


"...........그냥요."



카게야마가 눈을 비볐다. 술기운에 살짝 붉어진 볼의 오이카와가 가방을 던졌다. 오늘 리그에서 이겨서 말이야. 카게야가 웃었다. 어둑어둑한 주방으로 걸음을 옮기자 그제서야 오이카와의 눈에 찌그러진 케이크가 보였다. 오이카와가 카게야마를 바라보았다. 눈가가 붉었다.



".........왠 케이크..?"


"................아무것도.."



카게야마가 왈칵하고 터지는 울음에 말을 삼켰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 말을 하는게 왜 이렇게 힘든지. 그냥, 말 뿐일 뿐인데 아무것도 아닌게 제가 되어버린 것 같다.  카게야마가 되내었다. 뭐 그럴 수도 있어. 사사건건 외우는게 싫을 사람일 수도 있지. 사랑한다고 그 사람 키나, 몸무게, 성격, 혈액형 이런 것 까지 다 외울 필요는 없는 것처럼 말이야. 카게야마는 슬프지 않게, 아프지 않게 그리 제 가슴에 마취제를 놓는다.


가슴은 아픈데, 이해해보려 그리 계속 되내인다. 아프지 않아. 이해해 줄 수 있어. 카게야마가 웃었다. 괜찮아. 괜찮아. 아프지 않아. 진짜로. 정말.?


정말? 아프지 않아.


너 이렇게 보내면 또 다음번에 그런 아픔이 찾아올꺼야. 그때는 참을 수 있어? 카게야마.


아니.

사실 참을 수 없을 것 같아. 너무 힘들어.



"생일이었어요."


".........토비오쨩?"



제 생일이요. 어제. 카게야마가 케이크를 쓰레기통에 버리며 웃었다. 울고 있었다. 오이카와가 당황한 얼굴로 카게야마를 바라보았다. 왜 말 안했어? 



"오이카와상이 바쁘실까봐요."


".......생일을 왜 안 말해!!."


"사실은 알고 있으신가 싶었습니다."



카게야마가 오이카와를 보며 웃었다. 눈물이 젖은 얼굴로 울고 있었다. 그리고 몸을 웅크린다. 아파. 이제 또 그런 아픔을 겪기는 싫어. 아파. 그만하고 싶어. 카게야마 울음을 토해냈다. 아팠다. 미안한 표정의 오이카와가 입을 열었다.



"미안해. 진짜. 이번 시즌이 너무 바뻐서.."


"저는 시즌 안합니까?"


".............토비오."


"오이카와상만 그러는거 아니잖아요."



누구는 시간많아서 생일에 기다렸나요? 카게야마가 파란 눈동자로 입을 열었다. 왜 그래요. 제발.  그럼 말이라도 하지 마시지. 생일 같이 보내자고, 아님 사랑한다고 하지 말지.



"사랑한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냐."


"압니다."


".............왜그래? 너."



힘들어서 그래요. 왜요? 전 힘들다고도 말하면 안되는겁니까? 카게야마가 고개를 들었다.



"이제 그만해요. 우리"



이제, 아프기 싫습니다. 오이카와의 얼굴을 바라보던 카게야마가 말했다. 괜찮다고 말했어요. 아팠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했어요. 기다려도, 당신이 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어요. 근데.



사실 안 괜찮았으니까. 나.



제발 이제 날 놓아주세요. 아프기 싫어. 카게야마가 오이카와의 앞에서 서럽게 울음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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