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라는 애니에서 모티브를 얻었습니다. 

다만, 편지는 카게야마에게만 옵니다! 그래서 딱히 그 애니와 스토리상으로 전혀 상관 없습니다.

*카게야마가 인연 정리하는 글.

*커플링 요소는 그렇게 심하지 않음.

*시리즈글/생각날때마다 올라옴. 필력 상승용

*키워드: 힐링, 새드

*메인루트 맞춰보시라우.

*스포가 있을 수 있음!




'과거의 나에게 쓰는 편지'



편지가 도착했다. 편지의 내용은 정말이나 쓰잘데기 없다고 생각했다. 그건 일어날수도 없었고, 일어나서도 안되는 일이었으니까. 카게야마가 책상 위의 편지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험상맞게 얼굴을 찡그렸다. 무슨 소리야. 제법 정갈하게 접혀진 편지의 발신인은 익숙한 이름. 카게야마가 고개를 흔들었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자. 카게야마가 의자에 있던 가방을 걸쳤다. 딱히 책은 들어있지 않지만, 그래도 학생이니까.  방문을 열고 나서려던 카게야마가 미련이 남은 듯 책상을 바라보았다. 젠장. 카게야마가 결국 짜증어린 목소리를 내뱉으며 편지를 챙겼다. 평소처럼 따사로운 어느날, 카게야마에게 편지가 왔다. 카게야마의 손에서 구겨진 편지에 적혀진 발신자는.


열여덟의 카게야바 토비오. 



그리고 그 편지는 열일곱의 카게야마에게 온 편지였다.




*


*

*



"반갑습니다!!"


"오늘도 일찍 와서 연습하고 있네!"



스가와라의 목소리가 체육관에 울려퍼진다. 히나타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퍼졌다. 여름합숙에 가야하니까요! 시끄러워. 츠키시마의 타박에 히나타의 얼굴이 바르르 불타오른다. 카게야마는 뚱하게 배구공을 튕겼다. 아침에 온 편지 탓인가. 기분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었다. 그래. 사실 편지의 내용이 그리 좋을만한 내용도 아니니. 카게야마가 멍을 때리다 히나타의 부름에 정신을 차렸다. 



"어이! 카게야마군은 오늘 정신을 어디다 놓고 오셨나요?"


".........."


"헐. 진짜. 이상해!!"



카게야마가 평소처럼 히나타의 머리칼을 부여잡자 히나타가 비명을 지르며 스가와라의 옆으로 도망쳤다. 3학년들이 그 광경에 웃음을 터트렸다. 익숙한 일상이었다. 달라질 것 없는 일과. 하지만 가라앉은 기분이 당췌 나아질 기분이 들지 않았다. 카게야마가 말 없이 손가락만 만지작거리다 다른 부원들을 따라 타케다 고문의 앞에 주저 앉았다. 타케다가 부원들을 쓱 둘러본다. 안경을 추켜올린 그가 입을 열었다.



"다음주가 기말고사라는 거, 다들 알고 있죠?"



[-타케다 선생님이 낙제점을 피하지 못한다면, 여름합숙에 갈 수 없을 거라고 말할꺼다. 국어에서 낙제점이 나온다. 솔직히 공부 좀 하자. 한자를 외우는 것 말고 시 해석을 중심으로 공부할 것. 그리고 히나타에게 답안 밀려쓰는 바보같은 짓은 하지 말라 할 것. ]


[◎낙제하지 말것]


카게야마의 눈이 크게 떠졌다. 편지. 편지랑 내용이 같잖아? 히나타가 영혼이 나간 체 울부짓는 게 눈에 들어왔다. 타나카 선배와, 니시노야 선배까지 체육관이 요란했다. 낙제점을 못 넘는 건 하루이틀이 아니었으니 상관이 없었다.  카게야마가 고개를 숙였다. 아. 수 십번이고 고쳐쓴 흔적이 남아있던 편지. 제 가방 속에 들어있을 그 미심쩍은 편지.


그러니까.


카게야마가 흐릿하게 웃었다.  카게야마의 정신이 나갔어요! 야마구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게 아니야. 그냥. 카게야마 반박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허공같이 흩어질 것 같은 사실이 자꾸만 머릿속을 멤돈다. 정말인가. 그렇구나. 카게야마가 담담하게 웃었다.



[-그리고 너는 열여덟의 봄에, 죽음을 맞이할 예정이다.]




*




[-히나타와 속공으로 싸우게 된다]


[◎하지만 히나타의 의견을 존중해 줄것. 공격에서 중요한 건 스파이커의 의지이고, 그 판단을 믿어 줄 사람은 오로지 세터 뿐이니까.]


[◎혹여나 오이카와상을 만난다면, 존경했다고 한마디 할 것]


[-합숙에서 새로운 속공을 성공하게 된다.]


[◎그냥 아카아시 상에게 고맙다고 할 것]


[-오이카와상을 이겨야한다고 생각하지 말 것.]


[-춘고 예선전에서 아오바죠사이를 이기고, 시와토리자와도 이기고 전국에 나간다.]


[-전국에서 4강까지 오른다.]



카게야마가 어지럽게 흩어진 편지들 사이 몸을 눕혔다. 아직 읽지 못하고 대충 확인만 한 편지들이 침대 위에 흩어져 있었다. 지금 확인된 건 히나타와 속공여부로 싸우게 된다, 까지 인걸까. 카게야마가 손가락으로 세어보다 침대에 얼굴을 묻었다. 그러니까. 나. 정말 죽는걸까? 카게야마가 눈을 감았다. 몸을 아기처럼 웅크렸다. 그것도 1년 뒤에 죽는 걸까? 왜? 이유는 편지에 적혀있지 않았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이상한 얘기일 뿐이라 넘기려 쳐도 속속들이 맞아떨어지는 편지의 내용에 카게야마는 허탈했다.


일어난 사실은 -표시로, 내가 이루어줬으면 하는 일은 ◎로 적혀있었다. 저는 편지 내용처럼 국어의 시문학을 공부해 낙제점을 피하고, 히나타에게 답안지를 밀려쓰지 않았는지 확인하라는 언질을 했다. 그 결과로 한명의 낙오자도 없이 도쿄로 합숙을 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속공으로 인해 히나타와 싸웠다. 마치 마법처럼, 편지에 써진 그대로 이루어진다. 아니. 이야기가 흘러간다. 마치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마냥. 카게야마가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어썼다. 



[-후회하지 않고 싶었어.]


[◎그러니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인사할 것]



이 편지가 언제 너에게 도착할지는 모르겠지만,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길 바래. 카게야마가 눈을 감았다. 후회라. 후회할 것이 있긴 했었을까. 그럼. 어떻게 해야하지. 편지처럼 행동해야 하는 걸까? 편지에 적힌 것들을 이루면 나는 죽을 때 미련없이 죽을 수 있을까.  카게야마가 문득 드는 의문에 몸을 번쩍 일으켰다. 그래.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장난삼아서 죽을 때까지 배구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진짜 이루어질 줄이야. 카게야마가 잠시 생각했다. 그럼 뭐 그것도 나쁘진 않네. 카게야마가 키득거리며 웃다가  편지에서  ◎가 그려진 항목들을 옮겨 적기 시작했다. 



"되게 많네."



투덜거리던 카게야마 마지막 항목까지 옮겨적고 나서야 리스트를 쭈르륵 확인했다. 이거 마음에 안드는데? 카게야마가 험악한 표정으로 전국 4강에 x표를 쳤다. 그리고 다시 바꿔쓴다. 전국 우승- 그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을 한 카게야마가 웃었다. 그래도 쪽지 안에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이 어느 정도 들어 있는 것 같아 카게야마는 제법 만족스러웠다.  카게야마 토비오, 그러니까 제가 죽는다니. 눈치 없는 제가 생각해도 이건 아무도 믿어줄 것 같지 않다. 그러니까. 몰래 몰래 하자. 제가 몰래라 해봤다, 그것이 정말 몰래-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카게야마가 한참이나 쪽지를 바라보았다. 홀가분한 기분도 들고, 슬픈 기분도 든다.



그래도. 무언가 한마디씩 하고 싶은 사람들이 남아있어서 카게야마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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