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5만자.

*뒷부분에 내용 추가와 미세한 표현들, 오타가 수정되었습니다. 추가된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4 부분부터 보시면 됩니다!

*이벤 발표 했고, 다른분들을 위해 추가된 내용이 있는 수정본을 올립니다!

*책이 도착할때까지 연락이 안될 경우, 다른 분께 넘어갑니다!








목줄을 찬 짐승의 세계

The world of beasts with collar


-moCnancci











목줄을 차고 있다 해서, 우린 사랑받을 수 있을까?










*센티넬들은 초커라는 제어기를 착용합니다. 센티넬들의 인권이 바닥이라는 설정을 기본으로 두고 진행하는 소설입니다.

*센티넬의 식별은 A~H급과 숫자로 구분하며 숫자가 클수록, 알파벳 순서가 뒤로 갈수록 상당히 강력한 센티넬임을 의미합니다.





1.목줄을 찬 짐승






"보쿠토상."


"오랜만이네, 카게야마."


"............이제 그만하세요."



보쿠토가 날개를 펼치며 웃음을 터트렸다. 뭘 그만해? 보쿠토가 나른하게 웃었다. 카게야마가 날아오른 보쿠토를 바라본다. 이미 보쿠토의 손에는 알 수 없는 누군가의 피가 흥건하게 묻어있었다. 어쩔 수 없는 걸까. 반정부 세력이 되었다 해도 그는 센티넬 중에서도 최강자라 불리었던 사람. 반파된 대학교의 옥상 위에서 보쿠토가 카게야마의 이름을 불렀다.



"카게야마."


".........."


"넌, 내가 왜 이러는 줄 알아?"



벚꽃이 흩날리고 있었다. 아름다운 봄이었다. 보쿠토가 손에 쥐어진 벚꽃잎을 허공에 흩뿌렸다. 보고 싶어. 보쿠토가 서럽게 일그러진 얼굴로 말을 내뱉었다. 카게야마는 순간 그 사람이 누구일지 알 것 같다고 생각했다. 파란 눈동자에 절망감이 맴돌았다. 당신의 금안에 사라진 생기를 난 왜 몰랐을까. 경찰들이 민간인들을 대피시켰다. 요란한 비명소리와, 피 냄새 사이로 보쿠토가 절규하고 있었다. 맞아. 그랬지. 카게야마가 눈을 감았다.


오늘은 아카아시상이 떠나간 날이다.


카게야마가 습관처럼 초커를 만지작거리다 고개를 숙였다.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분명 보쿠토를 죽여야 한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죽이고 싶지 않아서 카게야마가 서러움을 삼켰다. 혼이 나간 것 같은 당신이 왜 그런 건지. 알 것 같아서. 경찰이 카게야마를 잡아 흔들었다. 그리고는 보쿠토를 죽이라 독촉했다. 단지 정부의 센티넬이 아니라는 이유로. 보쿠토는 반정부 세력이고, 일단 카게야마 저는 정부의 '짐승'이니. 카게야마가 흩날리는 벚꽃 나무들 사이 괴로워 보이는 보쿠토를 바라보았다.



"센티넬은 센티넬이 잡아야 하는 거 아냐?!!! 너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



그는 제게 소중한 사람인데. 카게야마가 멍하니 그를 바라본다. 세상이 그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아는데 내가 그를 죽일 수 있을까. 보쿠토 하나를 죽이기 위해 세상이 움직이고 있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헬기들과, 늘어나는 군인 병력. 카게야마가 저를 독촉하는 사람들에 못 이겨 걸음을 옮겼다. 죽여야 하는 걸까. 나는 이렇게 처참한 지경까지 몰렸나.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카게야마를 바라보던 보쿠토가 날개를 펼쳤다. 하늘을 가릴 만큼 커다랗게 펼쳐진 회색 날개가 펄럭였다. 그의 깃털이 하늘을 가린다. 카게야마가 하늘에 있는 보쿠토를 향해 입을 열었다.



"보쿠토상."


"............왜?"


".......................아무도 이제, 남아있지 않잖아요."



그 말을 내뱉는 카게야마의 표정이 서럽게 일그러진다. 표정은 꽤나 절박해서 보쿠토는 그 모습이 웃기다고 생각했다. 맞아, 그래. 저와 함께 했던 쿠로오도, 코즈메도, 코노하도, 그리고 아카아시도 모두 떠나버렸다. 이제 남은 건 저 혼자. 그래도 너는 아직 다정하구나. 보쿠토가 손을 뻗어 어릴 적 그때처럼, 카게야마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손을 뻗었다. 하지만 손은 카게야마에게 닿지 않았다. 허공에 보쿠토가 손짓했다. 가운데, 알 수 없는 벽이 있는 것 마냥. 멀다. 보쿠토가 멍하니 입을 열었다.


아. 우리 되게 멀리 있네.


덤덤히 내뱉는 보쿠토의 말에 카게야마가 울컥, 서러움을 토해냈다. 보쿠토상을 살리고 싶었다. 센티넬이 개같이 굴려지고, 무기로 취급당하는 걸 알아도. 보쿠토는 카게야마에게 인간이었다. 소중한 사람이니까.



"보쿠토상은 강하니까 정부에서도 용서해줄꺼....."


"못해. 아카아시를 죽인 사람들에게 난 돌아갈 수 없어."



그냥. 나는 아직, 보쿠토가 아련한 눈으로 웃었다



"세상을 용서를 할 수 없는 거야. "



그때처럼 보쿠토의 웃음은 맑았다. 카게야마가 오열했다. 제발. 보쿠토상. 주위가 요란했다. 저 말고 다른 H급의 센티넬이 오면 그때는 보쿠토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 다급한 얼굴의 카게야마가 소리를 질렀다. 소중한 사람이었던 보쿠토가 죽어버릴 것 같아 겁이 났다. 제 가족처럼 대해주던 센티넬들이 반란으로 떠난 지도 어느새 2년. 잘못했다고 하세요. 보쿠토상. 제발. 그도 제 부모처럼 떠나버릴까 겁이 났다.



"아카아시상은 이런 거 원하지 않았습니다!"



서럽게 뱉어내는 카게야마의 말에 보쿠토가 고개를 돌렸다. 제게 달려드는 군인의 목을 비틀은 보쿠토가 시체를 떨어트렸다. 쿵- 바닥에 떨어진 시체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민간인들이 시체에 비명을 지르는 소리까지도. 카게야마의 말에 보쿠토가 문득 무언가를 떠올린 듯 허탈하게 웃었다.


그래. 아카아시.


아카아시는 어디 있어?


케이지.


오늘은 예쁜 봄이야. 너를 닮은.


보쿠토가 무언가에 홀린 듯 땅으로 내려왔다. 보쿠토의 회색 깃털이 흩날렸다. 대학의 교정엔 벚꽃이 만발해 있었다. 보쿠토의 날갯짓에 분홍 벚꽃들이 흩날렸다. 연한 회색빛의 보쿠토가 대학 안을 헤맨다. 여기. 아카아시가 다니던 대학교 맞는데. 온통 분홍빛이잖아. 너 같던 예쁜, 분홍빛. 제게 총을 겨누는 경찰을 집어던진 보쿠토가 웃음을 터트렸다. 없잖아. 아카아시가 없잖아. 개 같은 놈들 덕분에. 아카아시가 죽었었지? 아카아시가 없어. 어디 있어. 아아. 괴로워.



'보쿠토상. 미워하지 마세요.'



세상을 미워하지 마세요.


제게 그리 말하며 아카아시가 죽어가고 있었다. 마치 봄처럼 아름답던 네가 죽어가고 있었다. 왜더라. 마치 무언가를 빼앗겨버린 것처럼 너는 메말라갔다. 내 품안에서. 난 바보같이 그것도 모르고 그저 너를 보고 웃고 있었어. 보쿠토가 주저앉아 몸을 웅크렸다. 너를 그렇게 만들어버린 사람들을 죽여도, 화가 풀리지 않더라. 아카아시. 보쿠토가 초커가 없어진 횅한 제 목을 만졌다. 너와 네가 살아갔던 세상은 센티넬이라는 이유로, 가이드라는 이유로 행복하게 살 수 없던 세상이었다. 기계처럼 이용만 당하다 죽어야했던 삶. 너의 수명을 빼앗아간 사람들의 절반은 지금 잘 살고 있어. 다 죽이고 가야하는데. 하지만 아카아시. 있잖아.


나 지금, 네가 없는 세상이 너무 힘들어.


서러움을 가득 담은 보쿠토가 터벅터벅, 카게야마에게 걸음을 옮겼다. 천진난만하게 그가 웃었다. 황금빛, 태양 같은 눈동자에 슬픔을 가득 담은 그가 속삭였다.



"보쿠토상..?"


"죽여줘."



아카아시가 없어. 보쿠토가 카게야마의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아카아시는 세상이 아름답다고 했는데. 아름답지 않네. 아카아시가 있던 세상은 그대로 죽어버려도 좋을 만큼 행복했는데 아카아시가 없는 세상은 그냥, 너무 힘들어서 죽어버리고 싶어. 투덜거리던 보쿠토가 일그러진 얼굴의 카게야마를 바라보았다.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감각기관은 변하지 않을 센티넬의 현실을 알려왔다.



-센티넬 G-201번을 폐기해라.



우리는 인간도 아닌가. 보쿠토는 속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너네가 뭐 그렇지. 끔찍했다. 절망스러웠다. 그래도 보쿠토는 계속 아카아시를 생각했다. 아카아시가 어찌 웃었더라. 웃는 거 예뻤는데. 아카아시가 보고 싶었다. 아카아시를 괴롭힌 사람들을 죽이고 죽여도, 외로움이 사라지지 않았다. 홀가분하지 않았다. 아카아시는 그렇게 괴로워하며 죽어갔는데. 인간도 아닌 나를 위해 살아가줬는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고작 사람을 죽이는 일.


이렇게 죽으면 아카아시가 화낼까?


보쿠토가 카게야마에게 물었다. 일그러진 얼굴의 카게야마가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


"아주."



카게야마가 서글픈 눈으로 총을 들어올렸다. 보쿠토가 카게야마를 바라보았다. 카게야마의 목에 걸린 초커가 눈에 들어왔다. 제 목에는 없는 초커. 총은 보쿠토의 이마를 겨누었다. 보쿠토의 금빛 눈동자가 카게야마를 응시했다.



"우리는 사랑할 수 없는 걸까?"



목줄을 차지 않고선.


보쿠토의 평소 목소리, 그대로. 그가 속삭였. 마치 서로 장난치던 과거처럼. 하지만 카게야마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저 방아쇠를 당길 뿐.


탕-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의 신형이 벚꽃 잎들 사이로 무너진다. 카게야마가 눈을 질끈 감으며 슬프게 웃었다. 죄송합니다. 편안하게 잠이 든 보쿠토를 바라보던 카게야마가 애써 입을 열었다.



"센티넬 G-201번. 폐기했습니다."



그래, 우린 인간이 아니었다.


목줄을 찬 짐승이었다.





*


*

*




센티넬 따위 다 없어져버렸으면 좋을 것 같은데. 하필 우리 대학교에서 깽판이람. 오이카와가 안경을 치켜 올리며 입을 열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시체에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시체야 실습하면서 워낙 많이 봐서 징그럽진 않았지만. 오이카와가 휴대폰을 확인했다. 걱정하는 사람들의 메시지가 가득했다. 답장하려 했지만 전공책이 무거워 움직임을 방해한다. 짜증나. 신경 해부학 책 진짜 찢어버리고 싶다. 어차피 한 몇 주 동안 학교 쉴 것 같긴 한데. 오이카와가 대피하기 위해 사람들 사이에 끼여 허겁지겁 대학교 정문을 나섰다.


오이카와, 제가 사는 세계는 센티넬이 존재하는 세상이었다. 그들은 초능력을 가진 인간. 이것만 듣는다면 센티넬은 아주 우월한 존재처럼 느껴질지도 몰랐다. 하지만, 센티넬들은 가이드가 없으면 쉽게 이성을 잃는 정신적인 충격에 예민한 존재. 그래서 병리학 교수님은 종종 아예 센티넬을 인간의 형태를 한 짐승으로 분류하곤 했었다. 가이드가 없으면 이성을 잃는 것은 물론이요, 폭주해서 주위 사람들까지 피해를 보니. 정문 근처에는 센티넬과 경찰이 빼곡했다. 펜스가 쳐진 안전한 곳에 이르러서야 오이카와가 휴대폰을 들어 부재중 목록을 확인했다.



"어. 이와짱!?"


-야 이 개새끼야!! 멀쩡하면 전화하라고!!!!!!


"아니 멀쩡하다고 문자했잖아? 혹시 이와짱 날 걱정하셨어?~"


-쿠소카와! 넌 그 와중에도 농담이 나와?!!



오이카와가 이와이즈미의 전화에 실실 웃음을 토해냈다. 이와쨩이 이 오이카와상 걱정도 해주고, 아주 감덩이야 감덩! 이와이즈미가 욕설을 내뱉었다. 야 이 미친 새끼야. 걱정했다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시체에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다. 여전히 주위에서는 계속 시체가 튀어나오고 있었다. 그 폭주했다던 센티넬이 어지간히도 많이 죽인 모양이네. 군인들이 들것에 실고 가는 시체를 바라보다 오이카와가 습관처럼 근육의 이름을 외웠다. 어제 해부학 쪽지시험 덕분인가.


오이카와는 의대생이다. 제 부모님이 의사라, 저도 막연히 의사가 되고 싶어 걸었던 길. 군인들이 치우는 시신을 바라보던 오이카와가 쓰게 웃었다. 제가 본 부모님의 마지막은 저런 모습이었다. 들것에 실린 채 괴로워하던, 오이카와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제 부모님은 의사의 본분을 다하시던 분들이었다. 전쟁이나, 가난한 나라에 가서 의료봉사를 하는 그런 의사. 그래서 오이카와는 제 부모님을 따라, 가끔씩 여러 나라를 여행하곤 했다. 오이카와는 부모님이 존경스러웠다. 의사에 대한 로망을 키워갔다. 그렇게 행복할 줄만 알았는데.


제 부모님은.



'울지마.'



가이드가 전쟁에서 죽어 폭주한 센티넬에게.



'미워하지 마렴. 토오루.'



죽었다.


그러다가는 소중히 할 사람도, 놓쳐버리고 말아. 죽어가는 어미가 애써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미가 하얗게 질린 안색으로 제게, 그리 미워하지 말라 애원했다. 오이카와는 어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도 그렇고, 내일도 그럴 것이다. 그냥 싫어. 오이카와는 왜 잠재적 살인마들을 세상에 풀어놓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렇다면, 부모님은 아직까지 살아계실지도 모르는데, 욕설을 삼킨 오이카와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저는 센티넬을 증오했다. 어쩌면 의예과를 온 것도 센티넬들이 생물학적으로 필요 없는 존재라는 걸 증명하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야!!! 너 뭐하냐?!!"



여자 센티넬 하나가 군인의 발길질에 몸을 웅크렸다. 죄송합니다. 센티넬이 군인에게 빌었다. 하지만 군인은 욕설을 내뱉으며 센티넬을 때리기 시작했다. 익숙한 풍경이었다. 센티넬이 맞는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지만 오늘따라 기분이 왠지 나빠졌다. 왜? 오이카와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정신을 차렸다. 무슨 일이야? 수화기 너머에서 이와이즈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쿠소카와? 무슨 일인데? 아무것도 아냐. 이와짱. 내가 자취방 돌아가서 연락줄께. 오이카와가 대충 얼버무리고는 휴대폰을 끊었다. 기분이 이상해.


폭주한 센티넬이 잡힌 모양이었다. 군인들의 움직임이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제가 쳐다보고 있던 군인과 여자 센티넬 쪽으로 센티넬 하나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검은 흑발에, 파란 눈동자를 가진 소년. 놀란 소년이 달려와 맞고 있던 센티넬을 제 뒤로 숨겼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폭주한 센티넬을 폐기했습니다."


"..............지금 사상자가 몇 명인 줄 아나?"



제 때 잡았어야지! 뭐하는 거야? 그냥 군인이 아니라 간부인가? 화난 얼굴의 군인이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이제 갓 20살이 되었을까 싶은 소년의 뺨을 내리쳤다. 짝- 소년의 고개가 돌아갔다. 울긋불긋한 뺨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소년은 울고 있었다. 손에는 누군가의 머리를 든 체. 아무래도 폭주했다던 그 센티넬인지 소년의 얼굴은 서러움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하지만 소년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앞으론 시정하겠습니다."


"너네 멸종시키려다 살려준 것만 해도 고맙게 여겨야지!!!"


"..알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네가 너 얘 때문에 살려주는 거야. 알았어? 간부가 소년을 가리키며 하는 말에 여자 센티넬이 허겁지겁 고개를 끄덕였다. 군인이 사라지자 여자 센티넬이 소년에게 안기며 울음을 토해냈다. 카게야마...흐어엉- 이름이 카게야마인 모양이었다.



"...미안"



소년이 센티넬을 끌어안았다. 그 순간 역겨움이 솟아올라싸. 아. 뭐야. 센티넬 주제에 인간인 척 하는 거야? 오이카와가 헛웃음을 토해냈다. 저렇게 아무리 착한 척 한들. 가이드가 없으면 이성을 잃은 짐승과 다를 바가 없잖아. 속이 매스꺼웠다. 올라올 것 같아. 역겨워서 그런가. 그리고 그 순간 오이카와와 소년의 눈이 마주쳤다. 소년에게 목에 차여진 초커가 반짝거렸다.


센티넬이라는 증표이자, 센티넬을 제어할 수 있는 물건.


오이카와는 마음이 비틀어지는 것을 느꼈다. 왜. 센티넬인데 인간인 척을 해? 짜증이 났다. 역겨워. 오이카와가 입을 열었다.



"괴물이면서."



소년이 들었는지 아닌지는 오이카와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오이카와는 소년이 싫을 뿐이었다.




*




센티넬은 초커를 착용했다. 언뜻 단순한 목걸이 같아 보이는 초커는 사실 센티넬을 제어하기 위한 도구이자 차별의 상징. 게다가 상부에서 원격조정까지 가능한 이 초커는 센티넬이 사망할 수 있는 고통까지 주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카게야마가 거울 앞에서 멍하니 제 목에 채워진 초커를 바라보았다. 열여섯 살 이후부터 단 한 번도 빼 본 적 없는 목걸이. 카게야마의 긴 손가락이 제 목걸이를 매만진다.



'이걸 착용하면, 이 나라는.'



아비가 웃고 있었다. 카게야마가 세면대에게 손을 올린 체 입술을 깨물었다.



'너를 환영한단다.'



전쟁 이후, 가이드를 잃은 센티넬이 속출했다. 가이드는 센티넬에 비해 몸을 지킬 수 없는 능력이 없었던 탓이었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센티넬은 쉽게 감정적으로 변하고, 폭주했다. 그들이 폭주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그들이 전쟁 후유증을 겪고, 괴로워하고 자책하는 걸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그저, 피해를 입히는 센티넬에 대한 인식만 나빠질 뿐. 그 이후 센티넬은 격리 대상이 되었다. 심한 경우에는 인간 취급을 해주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도, 보쿠토상도, 쿠로오상도, 모두 잘 지내고 있었다. 아카아시상이 죽기 전까지는. 카게야마가 제가 베어버린 보쿠토의 목을 떠올리다 변기를 붙들고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목줄을 차면.'



우린 사랑받을 수 있어?


괴물- 보쿠토상을 죽인 날, 들었던 말. 맞아. 센티넬은 나날이 짐승이 되어갔다. 말을 할 수 있는 짐승. 혹은 강한 무기. 센티넬의 인권은 보쿠토를 주축으로 한 센티넬의 반란 이후 점점 더 악화되어갔다. 보쿠토가 잘못한 건 아니였다. 그저 센티넬은 그럴 운명이었을 뿐. 어차피 센티넬의 인권 추락도 보쿠토가 반란을 일으킴으로 인해서 조금 늦어진 것 뿐이었다. 카게야마가 입안을 헹궜다. 비워도 비워도 속이 쓰린 건 나아지지 않았다. 구역질이 날 것 같은 건 변하지 않았다. 제 부모와 같은 사람을 죽여야 했다. 그래야 했다.


하지만 이유는 몰랐다.


카게야마가 화장실 구석에서 몸을 웅크렸다. 무서웠다. 아. 이젠. 너무 힘들어. 카게야마가 울음을 삼켰다.





*


*

*





센티넬은 제 3차 대전 이후, 무자비한 핵의 사용을 통해 유전자 변형으로 탄생한 것으로 추정되며 가이드라 지칭되는 인간이 없으면 이성을 잃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센티넬의 폭주 원인으로 가이드가 센티넬의 ADHD를 원인이 되는 물질을 조정한다는 설과...


듣기 좋은 교수님의 목소리가 강의실 안에 울려 퍼졌다. 살아있는 수면제구나~. 하나마키가 하품을 내쉬며 중얼거리자 오이카와가 하나마키를 타박했다. 야. 이거 3학점이야. 오이카와가 다시 시선을 칠판에 고정했다. 교수님의 칠판 소리와 아이들이 연필을 사각거리는 소리, 원형으로 된 강의실의 칠판에 빼곡하게 그려진 신경 세포들. 칠판에는 수많은 명칭들이 적혀 있었다. 말이 신경 해부학이지. 시바 외울 거 천지야. 오이카와가 나지막하게 욕설을 내뱉자 동기인 하나마키가 낄낄거렸다. 웃지마. 맛키. 내가 해부학 젤 싫어하는 거 알면서! 오이카와가 안경을 치켜 올리며 말하자 하나마키가 고개를 으쓱했다. 나는 뭐 해부학을 제일 잘해서. 오이카와가 하나마키를 발로 밀어버리며 입을 열었다. 죽어라 개새꺄. 이내 소란스러워진 강의실에 수업을 진행하던 교수가 오이카와의 이름을 불렀다.



"의대 명물 오이카와군?'


"...예?"


"수업이 재미없나 보죠?"


"아닙니다!! 교수님. 제가 어찌 교수님의 강의를 재미없게 듣겠습니까~!"



오이카와가 당황하며 교수님의 말에 대답하자 옆에서 하나마키가 낄낄거렸다. 의대 명물이래- 킬킬거리는 하나마키를 쥐어박고 싶어진 욕망이 드리워진 오이카와가 하나마키를 향해 몰래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이거나 먹어 맛키. 오이카와는 잘생긴 의예과 학생으로 이미 대학에서는 유명인사. 하지만 정작 오이카와는 교수님들의 지대한 관심을 받는 의대과 존잘남이라는 호칭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오이카와의 얼굴을 흘낏 바라본 나이 지긋한 교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번 파트는 센티넬과 가이드 파트입니다. 얼마 전에 센티넬이 우리 학교에서 폭주했죠? 오이카와군?"


"네."


"그럼 그 사건에 대한 오이카와군의 견해를 듣고 싶군요."



예상치 못한 질문에 오이카와가 입을 다물었다. 센티넬에 대해 적대적인 오이카와를 알기에 당황한 하나미키가 말을 얼버무렸다. 교수님.- 교수님이 오이카와의 과거를 알 수 없으니 나온 말이겠지. 강의실 안의 시선이 오이카와에게로 몰렸다. 하나마키가 일그러지는 오이카와의 표정에 재빨리 손을 들어 입을 열었다.



".....교수님. 수업 끝날 시간입니다만."


"그럼, 오이카와군의 말을 듣는 걸로 수업을 종료하겠습니다."



아- 교수님 존나 세. 하나마키가 투덜거렸다. 일그러진 얼굴을 결국 피지 못한 오이카와가 애써 웃었다. 어차피, 제가 센티넬을 싫어하는 건 동기들 사이에 파다했다. 오이카와와 교수의 시선이 교차되었다. 머리 속에 생각이 말꼬리 물듯 이어진다. 센티넬. 병상. 의사. 그리고 부모님. 미워하지마. 엄마. 제 어미의 목소리가 머리 속을 웅웅 울렸다. 어린 제가 울고 있었다. 죽어가는 엄마를 붙들고, 울고 있었다. 아.아. 뭘 미워하지 말라는 거야. 시발. 오이카와가 작게 욕설을 내뱉었다. 두 주먹을 꾹 쥔 오이카와가 입을 열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센티넬에 관한 규제를 강화하고......"



더 이상 센티넬이 태어나지 않도록 해야한다 생각합니다.


낮게 가라앉은 오이카와의 목소리가 강의실에 울려퍼진다. 생각보다 자극적인 발언에 강의실이 술렁였다. 몇몇 학생은 대놓고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잠시 말을 잃은 교수가 한 번 학생들을 훑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교수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몇 분이 지나고 나서야 그는 간신히 말을 내뱉었다. 그럼 수업 마치겠습니다. 교수의 말을 끝으로 학생들이 수군거리며 강의실 밖을 나섰다. 교수의 눈치를 보던 하나마키가 오이카와의 옆에서 입을 열었다.



"야. 너 말 너무 격하게 한 거 아니야?"


"무슨 격한 게 뭐가 있어. 내 말이 틀린 것도 아닌데. 안 그래?"


"오이카와 너. 지난번에 그거 못 봤냐? 센티넬 인권에 대해서 막말한 의사 면허 정지 당한거."


"다시 풀렸잖아. 그 의사 후원도 받고 있을껄?"



헐 진짜? 하나마키가 되묻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8억원인가. 다시 병원 지었어. 오이카와가 책을 가방에 집어넣으며 입을 열었다. 얼마 전 센티넬들의 치료를 거부한 의사가 폐업까지 갔다가 다시 여러 단체의 후원으로 개원한 일화는 유명했다. 오이카와의 당돌한 발언을 생각하던 하나마키가 키득거리며 입을 열었다. 근데 너 그러다가 가이드 되는 거 아니냐. 정색한 오이카와가 인상을 찡그렸다. 말이라도 하지마. 맛키! 기분 나뻐.



"원래, 하기 싫다고 생각하면. 하게 되는 법이지."



하나마키가 오이카와의 어깨에 팔을 올리며 킬킬거렸다. 그나저나 오늘 점심 학식 콜? 콜! 맛층은? 마츠카와 식당 앞에 있단다. 하나마키의 말에 오이카와가 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제가 가이드는 무슨. 어차피 가이드는 전 세계 인구 중에 5%도 안 되니까. 오이카와는 하나마키의 우스갯소리를 별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2. 짐승에게 주어진 삶.






근데 그 우스갯소리로 가이드 되는 거 아니냐고 했던 말이. 진짜가 될 줄은 몰랐는데.


오이카와가 눈앞의 회색 머리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눈물점이 인상 깊은 남자였다. 근데 뭐. 그건 그거고. 하나마키가 제 소식을 듣고 낄낄거릴 것이 눈에 보여 오이카와는 조금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아니. 사실 제가 가이드라는 얘기를 듣는 순간부터 이미 화는 머리까지 올라와 있었는지도 몰랐다. 아 짜증나. 제 앞에서 센티넬에 대해 이야기 하는 남자는 조근조근한 말투라 화를 내기도 애매한 상황. 진짜 다 때려 부셔버리고 싶다. 오이카와가 한숨을 내쉬었다.



"오이카와군과 가이딩 수치가 높은 센티넬은 사실 가이드가 처음이에요."


"가이드 꼭 해야 하나요?"


"..........아."



스가와라가 짜증스러운 어투의 오이카와에 잠시 입을 다물었다. 법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었다. 가이드라는 것이 특출하게 잘 맞는 사람들이 있긴 해도 가이딩 수치가 50%만 넘으면 센티넬에게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러니 가이드를 꼭 해야 하는 것만은 아니다. 다만, 스가와라가 서류를 내려다보았다. 서류에 맨 앞 장에 적힌 이름, 카게야마 토비오. 이 소년은 흔치 않은 H급 센티넬임에도 불구하고 가이드를 찾기가 힘들었다. 현 센터 내의 어떤 가이드들과도 50%가 넘지 않았다. 지금까지 업무를 수행한 것도 정신력으로 버틴 일. 가이드 없이 계속 정신력을 갉아먹으며 일을 진행했다간 언제 폭주하거나, 죽어버릴지 모르는 일이었다.



"어...지금 오이카와군과 가이딩 수치가 높은 센티넬이 H급이라, 사실 가이드가 없으면 조금 위험해요."


"그건 제 일이 아니잖아요. 공무원님."



오이카와가 정색하며 입을 열었다. 냉정한 오이카와의 말에 잠시 당황하던 스가와라가 애써 웃으며 덧붙였다. 가이드가 되면 월급이 상당해요. 스가와라가 돈으로 화제를 전환하자 오이카와가 미소를 지었다. 저 의대생이에요. 딱히. 돈은 뭐. 과외만 해도 수백씩 버는데? 오이카와가 의자에 삐딱하게 누우며 대답했다.



"그나저나 민간인을 갑작스럽게 불러다가 얘기하는 거 법적으로 유효한 일인가요?"


"...오이카와군."


"A급이든 B급이든, 제일 강한 H급이던지. 내가 알바는 아니에요. 상쾌하신 공무원씨?~ "


"..........."


"게다가 제가 알기로는 가이드라고 확정되어도 의무적으로 센티넬을 위해 근로할 법적인 근거는 없는 걸로 압니다만?"



오이카와가 냉담한 얼굴로 말했다. 당황한 스가와라가 오이카와의 말에 입술을 깨물었다. 아. 혹시 이 사람, 센티넬을 혐오하는 사람인가. 연신 웃고 있는 오이카와의 얼굴에서 내뱉어지는 말은 꽤나 독설이라, 설령 이 사람이 카게야마와 가이드가 된다 해도 문제가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단순히 오이카와를 되돌려 보내기에 카게야마가 지금 너무 벼랑까지 내몰린 상황. 갓 스무 살이 된 카게야마가 강제로 억제제를 맞으면서, 수 십 번 기절하며 임무를 수행한지 어느새 4년이 흘렀다. 그에 대한 부담을 알기에 스가와라가 애써 화를 참으며 오이카와를 회유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그때, 문이 열렸다.



"스가와라 선생님?"


"............아, 카게야마."



문이 열리는 소리에 오이카와가 눈을 잠시 게슴츠레 떴다. 누군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카게야마?- 스가와라의 말을 한 귀로 흘리고 있던 오이카와가 익숙한 이름에 고개를 들었다. 검은 흑발, 파란 눈동자. 어디선가 많이 본 눈동자다. 팔짱을 낀 오이카와가 눈동자를 굴렸다. 센티넬. 우리학교. 아. 그때 울고 있던 센티넬인가. 스가와라가 들이닥친 카게야마에게 난감해 하며 입을 열었다.



“여기는 오이카와씨. 네 가이드가 될...”


"가이드 된다고 말한 적은 없는데요."


"....................."



오이카와를 알아본 카게야마의 얼굴이 쓰게 변했다.


괴물이잖아-


그가 웃으며 입에 담았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소년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쓰게 웃었다. 가이딩 수치가 90%가 넘는 가이드의 등장에 조금 설렜는데. 의지할 사람이 생기는 걸까. 제 운명이라던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걸까. 바램이 컸나. 제가 알던 사람들은 서로의 가이드와 센티넬에게 다정하기 그지없어 순간 제 주제를 망각했었나보다. 짐승에게 사랑은 무슨. 현실은 이건데. 얼굴을 쓸어내린 카게야마가 애써 웃으며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폰을 만지작거리기 바빴다. 무례한 오이카와의 태도에 화난 스가와라가 입을 열었다.



"오이카와군이 센티넬을 싫어하는 건 압니다만, 사람 면전에서 말이 심하네요."


"........헤에. 사람이었어요?"


"...................."



괴물은 아니고?


오이카와가 낮게 가라앉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주변이 침묵으로 감돌았다. 센터 내에서 금기시 되었던 말이 너무나도 간단하게 입 밖으로 나왔다. 왜? 생물학적 근거라도 말해줘요? 인간이 아니라는 논문은 수 천 개나 되잖아? 그렇게 따지면 원숭이랑 인간이랑 다를 게 뭐야.



"두 번 다시 나한테 가이드니 뭐니. 지껄이지 마. "



생각만 해도 짜증나니까.


오이카와가 망설임 없이 의자에서 일어나 몸을 돌렸다. 카게야마가 눈을 감았다. 몇 번이나 익숙하게 겪었던 일이다. 하지만 오늘따라 유달리 서러운 것도 같다. 내가 그리 잘못한 걸까. 내가 그리 저 사람에게 잘못한 게 있었던 걸까. 그렇지만. 허탈하게 웃던 카게야마가 고개를 숙였다. 이미 사과하는 건 익숙한 걸. 아니, 그냥 내가 태어난 게 잘못인걸.



"...........죄송합니다."



카게야마! 스가와라가 카게야마의 말에 소리를 질렀다. 네가 왜 사과를 해! 카게야마가 스가와라의 손을 잡고 희미하게 웃었다. 괜찮아요. 스가와라상. 그리고 오이카와를 향해 말을 내뱉었다. 여전히 오이카와는 카게야마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제가 괴물인 건 알아요."


".........."


"저희는 가이드가 없으면 인간다운 생활이 힘든 것도 알아요."



그리고 가이드가 없으면..., 카게야마가 숨을 삼켰다. 오이카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파란 카게야마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파란 눈동자에는 서글픔이 가득했다. 감정이 흘러 넘쳐버릴 것 같은.


저희는 오이카와상이 말씀하셨던 괴물과도 같죠.


슬픈 얼굴의 카게야마가 말을 내뱉었다. 그래. 저는 괴물이었다. 아니라고 말 할 것도 없었다. 사람을 죽이는 데 능통한 기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열여섯 처음 초커를 차고 전쟁에 나가 사람을 죽여도 그게 당연한 거였다. 속이 매스껍고 제가 죽인 사람들이 환영이 되어 제 주위를 맴돌아도 그게 당연했다. 구해준 사람에게 욕을 먹는 것도, 살아갈 이유가 없는 것도. 센티넬이었다. 그저 기계처럼 명령을 받들며 사람을 죽이다. 그저 시간이 되면 폐기 처분 되는 삶.


어쩌면 가이드라는 삶이 당신의 찬란한 앞길을 막을지도 모르지.


센티넬의 삶은 아름답지 않으니까.



"임무에 따라가지 않으셔도 돼요. 원하지 않으면 필요 이상의 접촉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무리 애정에 목말라도, 정 없는 상대를 억지로 잡아두고 싶지는 않았다. 카게야마가 고개를 들었다. 울컥하고 감정이 솟아올랐다.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내 운명이긴 하지만, 당신은 아니니까. 애써 욕심으로 당신의 빛을 없애곤 싶지 않아. 카게야마가 간신히 말을 내뱉었다.



"그저, 제가 병원에 실려 갈 정도의 심각한 상처일 때만, 제 곁에 있어주세요."



그 정도의 자비는 베풀어주길, 부탁할게요.


카게야마가 오이카와를 향해 애써 한마디를 내뱉었다.





*


*

*




이번 임무는 혼자서 하긴 조금 무리였나. 반정부군이 적대적인 나라의 지원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몸이 망가지는 일이 늘었다. 무너진 건물 구석에 앉은 카게야마가 잘려버린 제 팔을 챙겼다. 잃어버리면 스가와라상한테 혼나니까. 힘들다. 땀에 젖은 머리가 반짝였다. 카게야마가 잠시 구석에 앉았다. 그러다 그냥,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센티넬이란 건 어떤거에요?'



어린 카게야마가 아카아시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카아시가 인자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어려운 사람들이나,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해주는 사람이야. 정말이에요? 따스한 설렘에 발갛게 붉어진 볼로 카게야마가 되물었다. 환하게 웃던 보쿠토가 방방 뛰는 어린 카게야마를 안고 입을 열었다. 맞아. 나를 봐! 헤이헤이헤이! 슈퍼 히어로~ 장난스럽게 보쿠토가 입을 열었다. 흐릿한 카게야마의 기억 사이로 환하게 웃는 보쿠토와 아카아시의 얼굴이 흩어진다. 센티넬이란 건 정말 그럴까. 한참동안이나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생각하던 카게야마가 눈을 껌뻑였다. 그렇지. 맞다.


다정하게 답해줬던 그들은 지금 이 세상에 없지.



"...................아프다."



허탈해진 카게야마가 잘려버린 왼쪽 팔을 부여잡으며 털썩 누웠다. 주위에는 피비린내가 가득했다. 제 능력인 중력으로 찍어 눌러버린 사람들이 알 수 없는 형체가 되어 굴러다닌다. 너덜너덜해진 다리로는 걸을 수가 없으니까 잠깐만 누워있을까. 하늘을 향해 차가운 바닥에 눕자 눈에 보이는 풍경들. 부서진 건물과 눈부신 햇빛. 매캐한 화약내. 카게야마가 몸을 웅크렸다. 천천히 재생되기 시작하는 몸. 하지만 이번 부상은 꽤 상태가 심각한지 평소보다 재생 속도가 느렸다. 그럼 또 오이카와상을 만나야 하는걸까. 시멘트 바닥의 차가움이 전해져 몸이 시렸다. 사실, 몸이 시린 것이 아니라 마음이 시린 것 같기도 하다. 카게야마의 머리카락이 바닥에 흩어졌다. 그리고 햇빛을 가리는 그림자.



"센티넬 H-31, 발견했습니다."



제 눈앞에 익숙한 인영이 보였다. 어. 쿠니미다. 나 데리러 온 건가. 카게야마가 눈을 껌뻑였다. 쿠니미가 카게야마의 상태에 얼굴이 미묘하게 찌푸려졌다.



"카게야마. 너 바보야?"



목에 초커를 찬 쿠니미가 입을 열었다. 미안해. 풀죽은 카게야마의 대답을 무시한 쿠니미가 손을 뻗어 카게야마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리고 상부에 상황보고를 보낸다. H-31, 오른쪽 다리 현재 사용 불가, 왼쪽 다리 역시 동일. 왼팔은 절단입니다. 더 이상 임무 수행은 어렵다고 판단되니, 센터로 귀환시키겠습니다. 쿠니미가 너덜너덜해진 카게야마의 몸을 들어올렸다. 품에 안긴 카게야마가 힘없이 늘어진다. 혼자서 수 백 명을 상대한 탓인지 카게야마의 몸에는 힘이 없었다. 카게야마가 쿠니미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잠들고 싶었다. 하지만 잠들면 안 돼. 언제 나도 이성을 잃고 폭주할지 모르니까. 애써 잠들지 않으려는 카게야마를 바라본 쿠니미가 혀를 찼다.



"네 몸 소중한지 좀 알았으면 좋겠는데. 카게야마."


".....?.....고마워."



카게야마의 대답에 쿠니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파란 빛과 함께 주위의 풍경이 변한다. 익숙한 곳. 센터. 센티넬들을 관리하는 기구. 카게야마가 피칠갑이 된 모습에 어느 누구도 놀라지 않았다. 그저 힐끗 쳐다보더니 다들 제 할일을 한다. 그게, 센티넬의 위치. 병동으로 걸음을 옮긴 쿠니미가 마련된 병상에 카게야마를 눕혔다. 격려가 아니야. 아까 내가 한 말은,- 쿠니미의 말에도 카게야마는 그저 얼굴에 물음표만 띄웠다. 하, 진짜. 쿠니미가 알 수 없는 눈으로 카게야마를 바라보았다. 카게야마는 팔다리가 잘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 피는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끔찍하게 고통스러울 텐데도. 왜 저리 덤덤할까. 쿠니미는 카게야마를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일단은 스가와라상을 부를 테니까 가만히 있어."


"..응."


"그리고."



문고리를 붙잡은 쿠니미가 입을 열었다. 이제 너도 바보 같은 짓은 그만해. 쿠니미의 눈동자가 쓰게 가라앉았다. 카게야마가 잊기 위해서 어려운 임무만을 맡고 있다는 걸 안다. 스스로가 견디지 못해서 저를 끝까지 내몰고 있다는 걸. 혹여나, 제가 그리 열심히 하면 센티넬들이 조금 행복해지지 않을까 싶어, 미련한 짓을 계속한다는 거 알고 있었다. 바보 같은 놈이었다. 카게야마는.



"네가 그리 열심히 해봤자 세상은 달라지지 않잖아."



대답 없는 신을 향해 눈을 감은 쿠니미의 덤덤한 목소리가 조용한 병실에 울려퍼졌다.


문은 닫혔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스가와라가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카게야마가 제 부서진 팔다리에 소독약을 뿌리는 스가와라를 바라보며 쿠니미의 말을 곱씹었다. 하지만 그 말을 곱씹을수록 머리는 더욱 더 어지럽기만 했다. 어려워. 쿠니미는. 카게야마가 눈을 껌뻑였다. 몸을 소중히 하라는 스가와라의 잔소리도 카게야마의 머릿속에 박히지 않았다. 생각에 빠진 카게야마가 멍하니 제 상처를 바라보자 옆에 서 있던 오이카와가 비아냥거렸다. 이번에는 상처가 심각해 스가와라에게 불려온 모양이었다.



".........언제까지 있어야 해요? 수업도 빼먹고 온건 데."


"........오이카와군. 가이드면 가이드의 임무에 충실해줄래요?"


"뭐~전 정식 가이드도 아닌데."



빈정거리는 오이카와의 말투에 스가와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오이카와가 시선을 돌리며 휘파람을 흥얼거렸다.



"근데 오늘은 진짜 상태 심각하네."


"알면 닥쳐줄래요. 오이카와군."


"헤에. 늘 상쾌하시던 의사선생님은 은근 까칠하시네요."



비꼬는 오이카와의 대답을 무시한 스가와라가 몸을 일으켰다. 카게야마가 완벽하게 괜찮아진 건 아니었지만 부상자가 카게야마 뿐이 아니라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 정도면, 충분히 카게야마가 회복할 수 있는 수준이니까. 피가 묻은 장갑을 벗은 스가와라가 획하니 오이카와를 흘겨보다 입을 열었다. 아마 오이카와군이 카게야마의 옆에 3시간 정도 같이 있어주면 될 것 같네요. 스가와라가 오이카와를 바라보며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눈물점을 가진 순수한 남자의 얼굴이 제법 매서웠다. 허튼 짓하지 마요. 성난 스가와라가 문을 열며 말하자 오이카와가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 했다.



"저는 일반인일 뿐이라구요~"


".........하아."


"뭐, 토비오짱은 제가 잘 돌볼테니. 가시죠?"


".......가볼께. 카게야마군."


"네. 안녕히 가세요. 스가와라상."



스가와라가 제게 인사를 하지 않고 가는 모습에 오이카와가 키득거렸다. 문이 닫히자 병실에 맴도는 적막. 스가와라가 떠난 병실은 조용했다. 그나저나 3시간 동안 뭐한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오이카와가 털썩,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 센티넬은 가이드와 함께 있는 것이 좋았다. 그러나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정식 가이드가 아니기에 그 제약에서 자유로웠다. 그 건, 카게야마가 오이카와에게 제안했던 것. 카게야마가 조용히 저를 향해 눈을 깜빡였다. 딱히 할 말이 없는 탓이겠지. 소독약 냄새가 알싸하게 병실에 맴돌았다. 휴대폰에 집중하던 오이카와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파란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아. 놀란 카게야마가 동그랗게 눈을 떴다. 혼자 무언가를 하려는 모양이었다. 저기, 죄송한데. 오이카와상.



"몸 좀 일으켜주실 수 있을까요."



카게야마의 사과에 오이카와가 얼굴을 찡그렸다. 알 수 없었다. 왜 기분이 나쁜지는. 왜 사과하는 거지? 찌푸려진 얼굴의 오이카와가 사람의 몰 꼴이 아닌 카게야마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렇게 가이드 아닌 가이드 생활을 하게 된 것도 어느새 한 달. 오이카와는 일주일에 한 번씩은 이렇게 처참하게 망가진 카게야마의 모습을 봐야했다. 해부학 실습을 하면서 잔인한 장면은 익숙하다고 해도, 쉽사리 적응이 되지는 않았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몸이 망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카게야마를 보고 깨닫곤 했으니까. 오이카와가 조심스레 손을 뻗어 망가진 카게야마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여 말을 꺼낸 카게야마가 아직 완벽히 재생되지 않은 팔로 애써 몸을 움직였다. 기어코 푹신한 베개에 몸을 기댄 카게야마가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힘들게 몸을 움직여 기껏 바라보는 건 창문. 오이카와가 빈정거리며 되물었다.



"그냥 누워있는 게 괜찮지 않겠어?"


"........그래도."



창밖을 보고 싶어요.


카게야마의 말에 오이카와가 입을 다물었다. 왠지 창문을 보고 싶어 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고 생각했다. 모든 센티넬에게 주어지지 않는 것인 단 하나. 평범한 일상. 센티넬은 초커를 착용하게 된 순간부터, 사실 일반적인 생활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초커는 차별이라는 것의 암묵적인 상징과도 마찬가지. 오이카와가 무심코 카게야마의 목을 향해 손을 뻗었다. 초커가 반짝였다. 겉모습이 인간과 같은 그들을 구분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 초커가 센티넬을 제어할 수 있다는 건 일차적인 의미에 불과했다. 오이카와의 손이 카게야마의 피부에 닿았다. 시선을 창문에 고정했던 카게야마가 온기에 오이카와를 바라본다. 창문 밖은 별다른 것이 없었다. 새파랗게 잎이 돋은 나무들. 잔디. 피어난 꽃들과 파란 하늘. 그곳에서 뛰어노는 아이들과, 사람들.


그리고 그게 당연하지 않은 아이.


카게야마가 제 손길에 몸을 움찔한다. 여린 목의 피부가 손에 미끄러진다. 카게야마가 눈을 크게 떴다. 파란 눈동자에 오이카와의 얼굴이 담긴다. 오이카와가 고개를 들었다. 마치, 빠져버릴 것 같다. 오이카와는 그리 생각했다. 갑자기 문득 묻고 싶어졌다. 손을 내린 오이카와가 입을 열었다.



"토비오짱은, 센티넬인 걸 후회해?"

"............"



의아한 눈으로 카게야마가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둘의 시선이 엇갈렸다. 카게야마가 망가진 손으로 초커에 손을 올린 오이카와의 손을 잡아 내렸다. 창밖에서는 아이들의 꺄르르거리는 웃음소리가 병실에 울려퍼진다.



"어떻게 후회해요?"



태어나길, 이렇게 태어난 걸.


당연한 것을 얘기하는 것 마냥, 소년은 덤덤했다.




*




"가이드 생활 재미있냐."


"닥쳐줄래. 맛키."


"겁나 웃기네. 너 센티넬 혐오자 아니었냐?"



하나마키가 낄낄거리며 입을 열자 오이카와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낸들 알아? 야. 그래도 용돈벌이는 꽤 됨. 옆에 있기만 해도. 오이카와의 말에 하나마키가 오이카와의 입에 제 귀를 가져댄다. 얼만데? 무어라 속삭이는 오이카와의 말에 하나마키가 눈을 크게 떴다. 야. 대박이네. 그 정도면 헐. 나도. 찡찡거리는 하나마키를 밀어낸 오이카와가 라떼를 쭉 빨아들였다. 카페의 탁자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신경 해부학 책들. 그리고 하필 시험 범위는 센티넬과 가이드. 아. 개 싫다. 오이카와가 책에 얼굴을 묻자 하나마키의 웃음소리가 더욱더 커졌다.



"가이드 하면 뭐하냐? 진짜 책에 나온 것처럼 관계도 해?"


"미친. 오이카와상 센티넬 남자거든?"


"앜. 미친 오이카와."



하나마키가 배를 잡으며 크게 웃자 오이카와가 입을 열었다. 가이딩 수치가 높아서 한 3년간은 그냥 같이 있기만 해도 된다더라. 오이카와가 스가와라 말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야. 진짜 가이드는 운명 아니고서는 못하겠네. 네 말 들으니까 갑자기 현타온다."


"가이드는 난데 왜 니가 현타와."


"아니. 진짜 운명이란 게 있는 것 같아서."



하나마키가 아메리카노를 빨아들이며 프린트를 정리했다. 오이카와는 여전히 책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어제 카게야마가 한 말이 자꾸만 머리를 가득 채웠다. 짜증나. 생각을 지우는 지우개가 있다면 카게야마에 대한 생각을 지워버리고 싶을 정도로 자꾸만 떠올랐다. 그 말 때문일까. 오이카와가 머리를 헝클였다. 아. 젠장. 덤덤하던 카게야마의 얼굴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돈다. 오이카와가 입을 열었다.



"맛키."


"왜?"


"나 한 번도 그런 생각 안 해봤거든."



센티넬들이 왜 차별받는지. 그냥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었어. 엎드린 오이카와를 바라본 하나마키가 의아한 표정으로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오이카와가 처음, 군 간부에게 맞고 있었던 여자 센티넬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센티넬을 지켜주던 카게야마까지.



"근데, 막상 차별 받는 센티넬을 보니까 기분이 너무 더러운거야."


"............그래서."


"나는 그게 걔네들이 인간인 척 하는 게 싫었어."



어쭙잖게 인간의 동정심을 자극한다고 생각했거든.


틀린 말도 아니었다. 의학계에서는 날이 갈수록 센티넬에 대한 논문이 쏟아졌다. 그중 반 이상이 센티넬과 인간은 명백히 다르다는 논문들. 그로인해 센티넬에 대한 차별과 폭력은 날이 갈수록 당연해졌다. 자식이 센티넬이면 인신매매처럼 팔아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버려지는 건 차라리 양호한 일. 센티넬은 일반 학교에 입학도 하지 못했다. 그 정도로 이 세상은 센티넬을 구분하는 것에 익숙했다. 오이카와가 얼굴을 묻었던 책 한 페이지를 바라보았다.


센티넬은 인간과 명백히 다른 점이 있다.-


시험에 나온다며 형광펜까지 쳐진 문장. 오이카와가 말을 이었다.



"근데 어제 내 센티넬이 그런 말을 하더라."



내가 후회 하냐고 물으니, 자기는 그렇게 태어나서 후회할 것도 없데.


오이카와가 손을 바라보았다. 카게야마의 피부가 닿았던 손. 부드러웠지. 하나마키가 오이카와의 말에 잠시 입을 다물었다. 오이카와가 몸을 일으켰다. 형광펜으로 밑줄이 그인 문장이 자꾸만 들어온다. 시끄러운 카페 안. 웃고 떠드는 사람들,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 부모와 온 아이들까지. 평범했다. 하지만 카게야마는 가지지 못했던 것. 스가와라에게 듣기론 카게야마는 열여섯부터 전장에 나갔다고 하니 사소한 행복이라는 건 알지도 못하는 게 분명했다.



"그냥, 그렇게 태어난 걸,"



잘못했다고 밀어붙이고 있다고.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어. 있잖아. 맛키. 내 센티넬이 다치면 어느 정도로 다치는 줄 알아? 팔 다리 하나씩은 기본이야. 오이카와가 웃었다. 그렇게 팔다리 잘렸는데도 내가 오면 웃어. 그냥 기계처럼. 진짜. 처음엔 짜증이 났다? 사실 지금도 짜증나. 왜 멍청하게 웃는지 모르겠어. 그냥.



"엿같아."



맛키. 있잖아. 난 그래도 센티넬이 싫어.


일그러진 얼굴의 오이카와가 욕설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인간으로써의 자존심이 무너진 오이카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발악이었다.








3.목줄을 차지 않은 삶







"보이니?"


"........."



별로 안 다쳤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내상인가. 카게야마가 눈가리개를 내려놓고 의사에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왼쪽 눈이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차츰차츰 회복될 상처니까. 그나저나 스가와라상 이외의 사람에게 진료를 받는 건 오랜만이다. 진료실 밖에 서 있을 오이카와를 생각하던 카게야마가 입을 열었다.



"오른쪽 눈은 괜찮습니다."


"네가 아무리 h급 센티넬이라도 이런 식으로 몸을 혹사시키면서 폭주하는 걸 막으면, 너 일찍 죽어."



걱정하는 의사의 말에 카게야마가 희미하게 웃었다. 고맙습니다. 카게야마의 말에 의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 전쟁 일어난다더니. 걱정스런 얼굴의 의사가 중얼거리며 카게야마의 왼쪽 눈을 살폈다. 최근 전쟁이 발발하기라도 할 것 마냥 주변국들의 도발이 심했다. 반정부군이 날뛰는 것은 일부에 불과 할 뿐. 그래서 센터의 센티넬 상당수가 전선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센티넬들은 인간이라기보다 무기에 가까웠으니까. 카게야마가 의사의 말을 흘리며 흐릿해진 왼쪽 눈을 껌뻑이다 고개를 숙였다. 이번엔 또 언제 괜찮아지려나.



"일단 약을 처방해줄께."


"..저...그냥 진통제를 처방해주세요."


"...?"


"저 임무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b구역, 반정부군의 몰살. 임무의 내용을 떠올리던 카게야마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아 싫다. 죽이는 건 싫어.



“조금은 쉬는 것이 어떨까?”


“그냥. 주세요. 부탁드리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카게야마가 의사에게 정중하게 부탁했다. 의사가 깊은 한숨을 내쉬다 적정량이 조금 넘는 진통제 다발을 한 아름 넘겼다. 이정도면 괜찮겠니? 카게야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진료실의 문을 열자 앞에 앉아있는 오이카와가 보였다. 의자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던 그가 뚱하게 카게야마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상쾌군께서 카게야마가 병원에 불려갔다고 얼마나 독촉을 해서 왔는데. 생각보다 멀쩡하네."


"오이카와상, 오늘은 일찍 가셔도 될 것 같아요."


"지금 가면, 나 상쾌군한테 욕먹는다고~ 토비오짱."



오이카와가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열었다. 전투로 너덜너덜해진 군복을 바라보던 카게야마가 잠시 생각했다. 맞아. 오이카와상이 있으면 내상이 빨리 괜찮아지지 않을까. 지난번에도 일찍 괜찮아졌으니까. 카게야마가 간신히 오이카와의 말에 대답했다.



"그러면, 센터까지만 동행해주세요."



흐릿한 왼쪽 눈 탓에 오이카와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다. 조금 아쉬운 것 같기도 하네. 카게야마가 습관적으로 초커를 만졌다. 그때, 오이카와상이 제 목을 만졌을 때 따뜻했는데. 마치. 인간처럼. 카게야마가 쓰게 웃었다. 흐릿한 시야에 익숙해지려 눈을 껌뻑였다. 그때였다. 툭. 갑자기 제 발밑 앞으로 인형 하나가 떨어진다. 자. 카게야마가 아무 생각 없이 인형을 주워 아이에게 건넸다. 하지만 인형을 받아든 아이의 얼굴이 제 목을 확인하더니 새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맞다. 나.


당황한 얼굴의 카게야마가 인형을 든 손에 힘을 풀었다. 미안해. 카게야마가 인형을 조심스레 다시 바닥에 내려놓았다. 전투 중 상황이 급박했던 탓에 일반 병원에 온 게 문제였을까. 갑자기 사람들이 수근수근 거리는 소리가 로비에 울려퍼졌다. 아이의 울음소리에 재빨리 카게야마가 군복을 치켜 올려 목을 가렸다. 아이가 제 부모에게 소리친다. 센티넬이야!!- 사람들의 시선이 카게야마를 향한다. 그 아이의 외침에 당황한 오이카와가 카게야마의 이름을 불렀다.



"............토비오짱?"



아. 언제나 겪었던 거지만 끔찍하게 싫은 것.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일그러진 얼굴의 카게야마가 황급히 병원 문을 나섰다. 토비오짱?! 어디가?!!!- 오이카와의 말에도 카게야마는 도망치듯이 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이 무서웠다. 분명 같은 인간이라고 배웠는데. 제가 착각이라도 한 것 마냥 사람들의 시선은 매서웠다. 그 시선을 피해 카게야마는 한참이나 뛰고 뛰었다. 그러나, 한참을 뛰었음에도 제게 도망칠 곳은 없어서 절망스러웠다. 도망칠 곳이 없어. 서글퍼진 카게야마가 도로 한 편에서 몸을 웅크렸다. 싫다. 싫어. 흐릿해진 눈에 세상이 어지럽다.


오이카와의 목소리가 멀리서 울려 퍼졌다. 아마 그는 저를 찾고 있는 듯 했다. 그에게서는 언제나 푸릇푸릇한 향이 났다. 제가 계속 그리워하던 느낌. 센티넬인 제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사람의 온기. 하지만,


그는 센티넬을 싫어했다.


카게야마가 눈을 감았다. 오늘따라 더 서글프네.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 건 하루 이틀이 아니었는데도. 오늘은 더. 당신이 있기 때문일까. 카게야마가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눈물이 날 것 같잖아. 검은 머리카락이 흩어졌다. 그리고. 제 위에 그림자가 진다. 싱그러운 기운이 저를 감싼다, 서글픈 기운도 가라앉을 만큼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오이카와상이구나. 그가 입을 연다.



"토비오짱. 왜 그래? "


"..............."


"그냥 그러려니 넘겨."



저를 따라오느라 숨이 일정치 않은 오이카와가 입을 열었다. 카게야마가 오이카와의 말에 눈을 크게 뜨다, 웃음을 터트렸다. 파란 눈동자에 이내 눈물이 고여 들어간다. 당신의 기운은 여전히 싱그러웠다. 내가 감히 당신의 센티넬이라는게 이해가 가지 않을 만큼. 카게야마가 눈물을 닦고 몸을 일으켰다. 죄송해요. 그냥. 기분이 잠깐 이상해져서. 카게야마가 애써 오이카와를 향해 웃었다. 잔뜩 인상이 찌푸려진 오이카와의 얼굴에 카게야마는 그저 웃는 것 밖에 할 수가 없었다. 당신이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그 말에 가슴이 아려서.


미칠 것만큼 슬픈데도.


웃는 것 밖에 할 수가 없어서.


그저 웃었다.


걸음을 옮기는 오이카와의 앞으로 어린 아이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카게야마를 보고 아까 울음을 터트렸던 그 아이. 카게야마가 아이의 눈치를 보며 오이카와의 뒤로 몸을 숨겼다. 뭐하는 거야. 토비오짱. 신경질이 난 오이카와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오이카와의 말을 끝으로 엄마를 쫓아가던 아이가 횡단보도에 인형을 떨어트렸다. 곰돌아- 아이가 인형의 이름을 부르며 인형을 줍기 위해 다시 횡단보도로 뛰어 들어갔다.


하지만, 도로 건너편에서 달려오는 화물차 하나. 멋모르는 아이가 인형을 들어올렸다. 아이의 코앞까지 들이닥친 화물차에 엄마로 보이는 여인이 비명을 질렀다.



"안 돼!!!!!!!!!!!!"



놀란 오이카와가 벌어질 끔찍한 상황에 눈을 질끈 감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이카와가 천천히 눈을 떴다. 뭐야. 아이가 하얗게 질린 안색으로 차를 바라보고 있었다.


커다란 화물차가 멈춰있었다.



"............토비오짱?"



오이카와는 본능적으로 차를 멈춘 사람이 카게야마라는 것을 알아챘다. 눈앞까지 다가온 화물차에 아이가 울음을 터트렸다. 고개를 돌린 오이카와가 카게야마를 바라보았다. 카게야마가 희미하게 웃다 괴로운 듯 제 목을 감싸 쥔다. 오이카와가 카게야마를 끌어안았다. 너 왜 그래? 소년이 아이가 멀쩡한 것을 확인하고는 환히 웃었다. 그 모습에 오이카와는 왠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이를 구해준 것이 카게야마인 걸 알아챈 부모가 화들짝 놀라듯이 아이를 품에 안아들고 도망친다. 구해준 건 카게야마임에도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피를 토하는 카게야마를 품에 안아든 오이카와가 그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더 없이 차가운 시선이었다. 따뜻하지 못한 세계였다. 제가 받았던 시선과는 턱없이 다른 세계.


토비오. 너.


이런 세계에서 살고 있었구나.



"..........................."



말도 없이 사라져버린 가족들에 오이카와가 그저 웃었다. 어이가 없다. 인사라도. 오이카와가 무어라 발끈 하려는 순간 카게야마가 왈칵하고 기침을 토해냈다. 바닥에 떨어지는 붉은 피가 마치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오이카와가 눈을 크게 떴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카게야마가 치밀어 오르는 고통에 눈을 감았다.


초커에는 제어 기능도 있다.


가이딩을 이용한 제어기능이 아닌, 단순한 고통을 이용한 제어 기능. 지정된 구역이 아닌 곳에서 능력을 쓰면, 이렇게 되곤 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될 걸 알면서도 계속 이런 짓을 반복하곤 했다. 속이 뒤틀리는 고통에 카게야마가 괴롭게 신음을 토해냈다. 당황한 오이카와가 계속 피를 토하는 카게야마에게 다가갔다. 토비오. 초커에서 불빛이 요란하게 반짝였다. 경찰의 사이렌 소리와 사람들의 웅성거림. 이게 무슨 상황이야. 오이카와는 지금 벌어지는 이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떨어지세요...오이카와상."


"지금. 이거 뭐야? "



당황한 얼굴의 오이카와가 카게야마의 피를 닦아내며 묻자 카게야마가 대답했다.



"그냥. 제가 센티넬이라서 그래요."



예상치 못한 말에 오이카와가 카게야마를 끌어안은 손에 힘을 풀었다. 어디선가 나타난 경찰들이 카게야마와 오이카와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 카게야마가 익숙한 듯 피를 닦아내고 오이카와의 품에서 몸을 일으켰다. 상당한 내상에 머리가 어지럽다. 하지만. 잠깐 다녀올게요. 그렇게 말한 카게야마가 수 십대의 경찰차가 에워싸진 곳으로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분명 누군가를 구한 카게야마의 손목에 수갑이 채워진다. 오이카와는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는 것 밖에 할 수가 없었다. 마치, 꿈처럼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그냥, 카게야마는.


아이를 구했을 뿐인데.


오이카와가 피가 묻은 손을 꾹 움켜쥐었다.




*


*

*




센티넬의 인권은 생각보다 낮았다. 어디 구역에서 살아야하고, 어떨 때만 능력을 써야하며 심각하게는 우수한 센티넬을 만들기 위해 결혼 상대까지 지정되는 일이 허다했다. 게다가 구해줘도 센티넬이라는 사실이 들어나면 사람들은 돌변했다.



"모르겠어?"


"..........."


"정말 카게야마가 왜 잡혀갔는지 모르나요? 오이카와군."



일그러진 얼굴의 스가와라가 입을 열었다. 침대 옆에 앉아있던 스가와라의 말에 오이카와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병상 위에 쓰러져 수액을 맞고 있는 카게야마가 눈에 들어왔다. 왠지 오이카와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초커는 가이딩 같은 제어제가 아니에요. 센티넬의 몸을 박살내버리는거죠"


"............그게 무슨 소리.."


"마음에 안 들면 그냥 인형처럼 센티넬을 망가트리는 겁니다."



스가와라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죄인거에요. 센티넬로써 사람을 구한 죄. 사람이 사람을 구했다면 의인으로 추앙받았겠죠. 하지만 센티넬은 그게 당연하지 않아요. 분노로 인해 스가와라의 주먹이 바들바들 떨렸다.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센티넬 수는 대략 1만 명이에요. 살상 능력을 가진 D급부터는 체 2000천명이 되지 않아요. 그들이 다 어디 있는 줄 아세요? 오이카와군. "



전쟁터에 있어요.


카게야마는 열여섯 살 때부터 전쟁을 돌아다녔고, 동년배인 쿠니미는 14살 때부터 전선에 섰다. 특히 카게야마는 어린나이에도 H급으로 배정받아 약 만 여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죽일 정도로 전장에 굴러다녔다. 확인 된 수치만 그 정도. 비공식적으로 따지면 숫자는 어마어마하다. 열여섯의 나이. 센티넬이 아니었다면 학교에서 뛰어놀고, 친구들과 추억을 쌓았을 시기에 카게야마는 전쟁에 내보내져야 했다. 오이카와가 스가와라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스가와라가 덤덤히 말을 이었다.



"폭주한 센티넬에 의해 죽었죠? 오이카와군의 부모님."


".........어떻게."


"...................그 때 당시 폭주한 센티넬에 의해 죽은 사람은 사실 그렇게 많지 않아요."



거짓말 하지 마.


오이카와가 으르렁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럼 그게 하필 우리 엄마였다고? 하필 우리 아빠였다고? 오이카와가 스가와라에게 소리쳤다. 웃기지마요. 그럼. 왜. 우리 엄마 아빠가 죽어야 했는데? 스가와라의 눈동자가 오이카와를 바라본다. 그리고 고통에 잠든 카게야마가 몸을 뒤척였다.



"센티넬이 왜 폭주하는 줄 알아요?"


"....가이드 가 없어..서."



오이카와가 스스로 뱉은 말에 문득 어떠한 사실을 깨달았다. 세계대전이 끝난 지 이제 고작 20년. 센티넬이 생겨난 건 30년.



"그럼 센티넬을 전장으로 내몰아, 가이드를 잃게 한 건 누구죠."


"............"


"만족해요?"



일그러진 얼굴의 스가와라가 되물었다. 오이카와의 부모님을 죽인 센티넬은 얼마가지 못해 자살했어요. 폭주로 인해 괴로워했거든요. 센티넬들은 악마, 혹은 괴물이라고 불리죠. 하지만 그들도 스스로를 그렇게 부르며 괴로워해. 스가와라가 카게야마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말했다.



"오이카와군의 입장도 이해해요. 오이카와군이 그 센티넬을 이해하고 용서할 이유는 없어요."


".............."


"하지만 본인이 그렇게 따지면 가이드를 잃은 수많은 센티넬들도, 인간을 미워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네요."



잘려 버린 목을 들고 울고 있던 첫 만남의 카게야마가 떠오른다. 저는 단순히 죽은 센티넬을 단순히 가이드를 잃어서 폭주했겠지. 라고 생각하고 그만둬버렸다. 오이카와가 예상치 못한 스가와라의 말에 혼란스러운 듯 눈을 크게 뜨다 고개를 숙였다. 젠장. 어쩌란 말이야. 그저 부모님을 잃었기에, 센티넬에게 죽었기에 저는 그들을 원망했다. 하지만 전선을 돌아다니는 의사라면 그건 언젠간 발생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도. 그저 단순히 원망할 대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건지도 몰랐다.



"센티넬들의 인권은 한없이 밑바닥이에요."



소수의 센티넬만 소모품처럼 써버리면 인간은 안전하니까.



"지금 당신들의 행복은, 센티넬들의 죽음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라고는 왜 생각을 하지 않아요?"



인간은 참 행복하죠? 오이카와군?


스가와라가 오이카와를 향해 쓰게 웃었다.





*


*


*





"...........오이카와상?"


".............."



잠에서 일어나보니 제 눈앞에 오이카와가 서 있었다. 그래서, 일찍 일어난 거구나. 초커가 센티넬에게 내상을 입히는 정도는 생각보다 강하다. 한 3일은 내리 앓을 줄 알았는데. 카게야마가 휴대폰으로 하루가 지난 걸 확인하고 오이카와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일그러진 오이카와의 얼굴은 펴질 기미가 없었다. 왜 그러지. 화나셨나. 카게야마가 머뭇머뭇 오이카와에게 손을 뻗으려다 멈추고, 입을 열었다.



"오이카와상? 왜 여기 있어요?"


"토비오."



너는 그렇게 살아도 괜찮은 거야?


오이카와가 가라앉는 눈으로 물었다.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카게야마가 오이카와의 물음에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파란 눈동자에는 괴로움이나, 일말의 절망 같은 건 들어있지 않아서 오이카와는 더 괴로웠다. 넌. 왜 그래? 이해할 수가 없어. 수십 년 간 원망만 해왔던 저와는 달랐다. 잃은 건 나보다 네가 더 많으면서. 카게야마가 웃으며 조심스레 오이카와의 얼굴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꼼꼼히 흘러내린 오이카와의 눈물을 닦았다. 울지 마세요. 오이카와의 눈동자가 카게야마를 바라보았다. 일그러진 얼굴의 오이카와가 입술을 깨물었다. 아. 당신 나를 동정하고 있구나. 카게야마가 쓰게 웃었다.



"오이카와상.“



저는 짐승일 뿐이에요.


목줄을 찬, 인간의 형태를 한 짐승. 카게야마가 덤덤히 입을 열었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말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서. 어차피, 우리의 관계는 득이 되는 관계가 아니다. 당신은 나와 함께해선 안 돼. 언제 죽을지 모르는 나에게 마음을 가지지마. 아파하지마.



“짐승에게 동정하지 마세요.”



당신이 나 때문에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가이드에게 센티넬이 어떤지 모르지만. 센티넬인 나에게 가이드인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니까. 카게야마가 애써 매몰차게 말을 내뱉었다.



“가이드 이제 그만할래요?”



카게야마가 웃었다. 마음은 메말라 죽어버릴 것 같아도. 그저 웃었다.









4. 목줄을 찬 너에게





그렇게, 오이카와와 카게야마가 애매한 관계가 된지 얼마가지 않아, 전쟁이 일어났다. 카게야마가 일주일마다 심한 부상을 입었던 것이 불안해진 전선을 증명하는 것 마냥. 대다수의 센티넬과 가이드들이 전선으로 돌려졌다. 현 센티넬 중에서도 현재 최강자급인 카게야마는 가장 최전방이자 중요한 위치에 배정받았다. 가이드인 오이카와가 의예과를 수료한 이유도 제법 컸다.


안경을 쓴 오이카와가 가슴팍에 총알이 박힌 부상병의 수술을 진행했다. 갈기갈기 찢긴 핏줄에서 피가 튀어나왔다. 아. 제발. 일그러진 얼굴의 오이카와가 애써 상처부위를 봉합한다. 총알이 스쳐지나간 동맥에 이미 큰 손상이 있었다. 심장 박동이 줄어들고 있었다. 피가 부족해. 턱없이 부족한 수혈 팩을 확인하다 오이카와가 입을 열었다. 컴프레셔 들어가. 야하바가 부상병의 가슴에 기기를 붙인다. 압박 들어갑니다. 하나 둘, 셋! 압박을 주어도 줄어드는 심박 수는 다시 올라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조금만 더. 오이카와가 이를 깨물고 다시 한 번 컴프레셔를 하려는 순간.


삐-


기계가 정적을 알렸다. 0이 된 심박 수를 확인하던 오이카와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사망을 알리는 소리. 야하바가 울먹이듯 입을 열었다. 오이카와상. 하지만 가라앉은 오이카와의 눈동자는 미동이 없었다.



"어떡할까요..?"


"일단, 피는 빼둬."



오이카와가 장갑과 마스크를 벗어던지며 입을 열었다. 끈적이는 혈액의 촉감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 같다. 사체의 혈액은 사후 10시간까지 이용 가능하니까. 전쟁이 난 지금, 턱없이 혈액량이 부족한 상황. 오이카와가 사망한 군인의 신원을 확인한다. D급 센티넬. 오이카와가 눈을 지그시 눌렀다.



"하아."



전장은 생각보다 참혹했다. 팔이 없어져서 오는 사람, 눈을 잃은 사람. 게다가 그런 부상자를 치료하기 위해 하루에 수술을 세 네 번씩 하는 터라 기본적으로 깔린 정신력의 소모도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오이카와가 잠시 쉬기 위해 눈을 감았다. 머리가 지끈지끈거렸다. 오늘은 유난히 수술 중 사망자가 많은 날이었다. 센티넬은 보통 최전방에서 돌려진다. 후방에서 엄호 사격을 하는 건 일반인. 넓은 전선을 단지 이천 명의 센티넬로 커버하는 것이다. 전쟁이 난 나라에서 센티넬은 인간 세계의 최하층에 위치했다. 인간들의 행복을 위해서. 실제로 제가 수술을 진행하는 부상병의 대다수가 센티넬이다.


그래, 싸우는 건 오직 센티넬 뿐이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오이카와가 게슴츠레 눈을 뜨자 막 전투가 끝났는지 피범벅으로 변해버린 카게야마가 눈에 들어왔다. 지친 모습의 카게야마가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와 터벅터벅 걸었다. 사람의 피를 뒤집어 쓴 카게야마의 모습에 일반 군인들이 수군거렸다. 괴물이다. 수군거리는 군인들의 모습에 한숨을 쉬던 오이카와가 걸음을 옮겨 카게야마에게로 향했다.



"오이카와상..?"


"자. 피는 일단 좀 닦아."


"감사합니다."



카게야마가 오이카와가 건낸 수건을 받아들고 얼굴을 닦아낸다. 붉게 물든 피에 카게야마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센티넬에 비해, 인간은 정말 손쉽게 터져버리곤 했다. 그렇지만 명령이니까. 오이카와의 파란 가운에 묻은 피에 카게야마가 오이카와를 올려다본다.



"죽었나요. 그 아이."


"그래."



수술 중 사망했던 D급 센티넬은 카게야마가 구해온 아이였다. 오이카와의 대답에 미묘한 표정을 짓던 카게야마가 막사로 걸음을 옮겼다. 오이카와가 가운을 벗어 놓고 카게야마의 곁에 털썩 앉았다. 카게야마가 조용히 오이카와의 곁, 침상에 몸을 뉘였다. 가이드인 오이카와가 곁에 있어주기만 해도 회복은 빨랐다. 전쟁에 지친 몸이 조금은 편해졌다. 당신의 싱그러운 기운 덕분에. 오이카와의 눈치를 심하게 살피는 카게야마지만 오늘은 유달리 피곤했는지 지친 얼굴로 눈을 감았다. 옷을 갈아입을 생각조차하지 못하는 카게야마의 모습에 오이카와가 쓰게 웃었다. 하긴 또, 습격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눈을 떠야할 사람은 카게야마였으니까.


자그마한 상처들이 난 손을 바라보던 오이카와가 스가와라의 말을 떠올렸다.



'카게야마가 너무 힘든 것 같으면, 손 한번은 잡아줘.'



센티넬은 가이드와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좋아지니까,- 오이카와가 머뭇거리다 발갛게 터버린 카게야마의 손을 잡았다. 손에 느껴지는 온기에 카게야마가 눈을 떴다. 오이카와상? 오이카와의 싱그러운 기운이 카게야마의 온몸을 감싼다. 오이카와가 잡은 카게야마의 손을 만지작거리다가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푹 자둬. 오이카와의 말에 카게야마가 눈을 껌뻑였다.



"싫어하시면 괜찮..."


"싫어하는 거 아니니까. 잡고 있어. 이게 너도 조금 더 편하다며 토비오쨩."



오이카와의 말에 카게야마가 망설이다 아이처럼 몸을 웅크렸다. 손은 마치 탯줄처럼 놓지 않은 체. 그리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오래가지 않아,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잠들었구나. 동앗줄처럼 간절하게 제 손을 잡은 카게야마를 바라보다 오이카와가 웃었다.


이게 옳은 걸까.


이 어린 아이가, 괴로워하며 모든 사람들의 업을 떠맡는 것이. 카게야마의 손에 얼굴을 묻은 오이카와가 눈을 감았다.



아니, 틀린 건 세상이야.




*




카게야마는 애써 오이카와를 밀어냈었다. 그가 다칠까 전전 긍긍하며 애써 밀어냈다. 그러다보면, 언젠간 당신이 나를 미워하던 그때로 돌아가지 않을까 싶었다. 그때로 돌아가면 내게 무슨 일이 생겨도 당신이 아파하지 않을까 싶었다. 요즘 들어 다정하던 오이카와를 떠올리던 카게야마가 막사에 주저앉아 몸을 웅크렸다. 피곤해.



“오늘은 몇 명이나 죽였는데?”


“4중대.”


“에. 아깝네. 나 3중대.”



쿠니미가 총기를 손질하며 대답했다. 센티넬에게 죽인 사람의 수는 몇 명으로 확인하기엔 너무나 많은 수였다. 피범벅이 된 얼굴을 닦아낸 카게야마가 눈을 껌벅였다. 어. 시체가 저를 향해 웃고 있었다. 카게야마가 이젠 익숙해진 얼굴로 주머니를 뒤졌다. 약이 어디 있더라. 바로 전 전투에서 죽였던 사람들의 환청이 눈에 맴돌기 시작했다. 이젠 전쟁이 사람을 어떻게 미치게 만드는지 알 것도 같다. 지끈거리는 두통에 카게야마가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들이 속삭였다. 악마. 제가 죽인 사람들의 대다수는 저를 그리 칭하곤 했다. 손에 십자가를 꾹 쥐고, 마치 신이 자기를 구해주기라도 할 것 마냥. 낯선 남자가 제게 저주를 퍼부었다. 온몸이 부셔진 군인이 땅바닥에 몸을 질질 끌며 제게 다가온다. 또 시작인건가. 카게야마가 습관적으로 약통을 꺼내 씹었다. 하얀 알약들이 와그작거리며 부셔졌다. 쓰다. 맛없어.



“항우울제?”


“응. 환각 보일 때 마다 먹으면 좋다고 그래서.”


“그나저나 네 가이드는?”



쿠니미가 멀리 보이는 킨다이치를 흘낏 바라보다 물었다. 카게야마가 고개를 내저었다. 전투에는 따라 오지 말라고 했어. 우리가 배치 받은 곳 위험하니까. 그리고 사이 안 좋기도 하고. 쿠미니가 눈을 껌뻑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카게야마의 가이드. 센티넬 혐오자라고 했었나. 하지만 너 가이드 없이 전투 계속하는 건 무리일 텐데. 쿠니미가 군용가방에 머리를 기대며 묻자 카게야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전투에 익숙하다 해도, 사람이 죽어나가는 걸 보는 건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다. 하지만 제가 스스로의 정신력을 갈아먹으며 폭주를 억제하는 것보다 그가 나를 향해 바라볼 그 눈빛이 더 끔찍해서. 카게야마가 쓰게 웃으며 쿠니미의 말에 대답했다. 알고 있어, 쿠니미. 이번에 너 동쪽 전선으로 가지? 카게야마가 애써 말을 돌렸다. 맞아. 쿠니미는 알고 있지만 그냥 카게야마의 말에 대답했다. 하얀 약통을 바라보던 카게야마가 중얼거렸다.



“언제 끝날까.”


“.....우리가 다 죽으면?”


“진짜. 그러면 뭔가 슬플 것 같아.”



내가 그러니까, 부질없는 짓 하지 말랬잖아.


쿠니미가 일반병들의 막사를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 전쟁에 참여하는 건 센티넬 위주다. 센티넬을 일반병들이 원호 사격하는 방식. 실질적인 전투에 참여하는 건 센티넬이고, 전쟁 후유증을 가장 심각하게 겪는 것도 센티넬. 쿠니미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열 넷부터 전장에 돌아다녔는데,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죽는 건가.



“농담이라도 그런 소리 하지마.”


“농담 아닌데.”


“.........”



당황한 카게야마의 얼굴을 바라보던 쿠니미가 웃음을 터트렸다. 카게야마가 저를 애달게 쳐다본다. 미련하게 착한 아이였다. 제가 노력하면 세상이 바뀔 수 있을 것이라 믿는 아이.



“다음번에 봐.”



쿠니미가 킨다이치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왠지, 정말 마지막이 될 것 같아서. 카게야마는 가슴이 아프다고 생각했다. 안녕. 쿠니미. 군용차량에 올라타는 쿠니미를 향해 카게야마가 멍하니 손을 흔들었다.



‘울어?’


‘.......응.’


‘울지마. 운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잖아.’


‘하지만.’



행복해지고 싶어. 제 울음 섞인 말에 어린 쿠니미가 쓰게 웃었다. 센터엔 아무도 없었다. 센티넬들의 인권 격하정책에 반발하고 일어난 센티넬들의 반란. 어린 센티넬들은 무언가를 판단할 능력이 없었다. 그저 어른들의 장기말이 될 뿐. 시끄러운 주위에 귀를 틀어막은 카게야마가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



‘왜 다들 싸울까.’


‘인간이잖아.’


‘그럼 우린?’



쿠니미는 침묵하다 말을 내뱉었다. 그러게. 우린 인간일까.



‘우린 사랑 받을 수 있는 걸까.‘



쿠니미가 조용히 웃으며 말을 내뱉었다. 카게야마가 파란 눈을 크게 뜨다 슬프게 웃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슬퍼져서. 카게야마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몸을 웅크리는 것 밖에 할 수가 없었다. 제 목에 걸린 초커가 붉게 반짝였다.




*


*

*



전투를 하는 것도, 어제와 다른 건 없었다. 근데도 오늘은 유달리 괴로워서 미쳐버릴 것 같았다. 중력으로 적군을 찍어눌러버린 카게야마가 멍하니 지평선을 바라본다. 언제까지 이렇게 죽여야 하는 걸까. 카게야마가 제게 공격을 가하는 센티넬의 목을 잘라버리고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갑갑하게 채워진 군복과 초커가 오늘따라 숨이 막힐 정도로 괴로웠다.



“괴물!!!!”



어린 적군 하나가 제게 짓눌러 터져버린 시신을 붙들고 소리를 질렀다. 카게야마가 쓰게 웃었다. 소년의 얼굴은 눈물로 젖어있었다. 무서워? 괴물이야? 나. 카게야마가 손을 들어올렸다. 새하얗게 질린 아이의 얼굴. 그리고 그 아이에게 내려앉는 중력. 이제 스무 살도 넘긴 것 같지 않은 소년이 제 능력에 의해 너무나도 손쉽게 터져버렸다. 적군이 조용해졌다. 카게야마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붉게 물든 대지를 바라보다 카게야마가 손을 올려 얼굴을 감쌌다. 괴로웠다. 너무나도 괴로워서. 나는 정말 괴물인 걸까.


멋모르고 사람을 처음 죽였던 열여섯.


너무나 쉽게 죽어버리던 사람들. 환각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까 제게 죽은 아이가, 울먹이며 다가온다. 터져버린 몸을 끌고 다가온다. 사람을 죽이고 나면, 센터 사람들은 제게 잘했다며 칭찬을 했다. 그게 못내 받고 싶어 악착같이 사람을 죽였다. 명령을 따랐다. 조금 더 열심히 하면. 사람들의 말을 조금 더 열심히 하면 센티넬들을 사랑해주지 않을까 싶어. 제게 괴물이라 사람들이 저주를 한다. 온전한 사람들이 없었다. 제 능력인 중력으로 죽여 버린 사람들이 일그러진 얼굴로 제게 다가온다.


그리고.



‘괴물이면서.’



나에게 입을 여는 당신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 아니야. 괴물이 아니야. 나 당신을 좋아해. 카게야마가 오열하듯 일그러진 얼굴의 오이카와에게 말을 내뱉었다. 오이카와는 매몰찼다. 환영인 걸 알아도, 제가 환각을 보는 걸 알아도 카게야마는 괴로웠다.



“괴물인 거 알아.”



내가 인간이 아닌 거 나도 알아. 카게야마가 괴롭게 소리쳤다. 초커를 차지 않으면, 인간 취급조차 받지 못하는 우리들. 하지만. 공포에 질린 적군의 모습이 웃겼다.



“사랑받고 싶은 게 죄인거야?”



그저.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었어. 카게야마가 오열했다. 시체들이 온몸을 더듬었다. 제가 죽인 수많은 사람들이 악몽이 되어 찾아온다. 카게야마가 괴롭게 눈을 감았다. 미안해. 죽어버린 아이를 품에 안았다. 근데 너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어. 카게야마가 기괴하게 웃었다. 파란 눈이 붉게 달아오른다.


망가진 감정에 폭주하는 능력. 주위의 시신들이 날아올랐다. 귀에 채워진 무전기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H-31!!!, 카게야마란 이름도 가지지 못한 센티넬. 정부에서 카게야마는 그저 식별번호를 가진 무기일 뿐. 사람들이 날아오르고 있었다. 눈물범벅이 된 얼굴의 카게야마가 그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본다. 땅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대로 날아가 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죽어버려도 괜찮을 것 같아. 괴로웠다. 땅이 부셔진다. 세상이 거꾸로 되어버렸으면 좋겠어. 카게야마가 고개를 들었다. 하늘이 맑았다. 제가 죽인 수많은 사람들의 꿈처럼. 카게야마의 몸도 날아오른다.



[H-31!!! 정신차려!!!!]



초커가 붉게 반짝이기 시작했다. 대지가 부서지고 있었다. 카게야마의 능력인 중력으로 인해 모든 것이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파란 하늘이 피로 붉게 변했다. 괴물이지? 나. 결국 카게야마의 파란 눈이 서글픔으로 일그러졌다.


그리고 ,


일제히 모든 것이 땅으로 추락한다. 퍽. 퍽. 사람들이 추락해서 죽어간다. 아군이고, 적군이고 할 것 없이. 모두 다 땅으로 추락한다. 붉은 빛으로 변해가는 세상. 카게야마가 흐릿해지는 눈을 감았다. 다 죽어버려 그냥. 다. 다 죽어버려. 괴로워. 막혀오는 숨에 목을 틀어쥐었다. 숨이 막혀. 익숙한 목소리.



“카게야마!!!!!!!!”



문득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 카게야마가 그 목소리에 능력을 멈췄다. 카게야마가 멍하니 피로 가득찬 세상을 응시했다. 고요해진 세상이 싫었다. 죽고 싶어. 카게야마가 계속 중얼거렸다. 누군가 뒤에서 저를 끌어안았다. 울고 있는 나를 끌어안았다.



“괜찮아.”



오이카와가 카게야마를 끌어안고 속삭였다. 싱그러운 기운이 언제나 그랬듯 풍겨진다. 붉게 넘쳐흐를 것 같던 감정이 고요하게 변한다. 당신의 기운이 나를 덮었다. 오이카와가 카게야마의 얼굴을 붙었다. 숨이 고르지 못한 오이카와가 카게야마의 파란 눈을 저와 마주치게 했다. 괴롭지? 미안해. 오이카와가 쓰게 웃으며 카게야마를 끌어안았다. 알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분명 제가 폭주했다는 걸 알면 괴로워 할 거야. 오이카와가 계속 속삭였다.



“괜찮아.”


“.....오이카..와상.”


“토비오는 괴물이 아니야.”



제게 달라붙는 시체들은 여전했다. 괴로운 것도 여전했고, 죽어버리고 싶은 것도 여전했다. 제가 괴물인 것도 여전했다. 카게야마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리고 저를 끌어안은 오이카와의 품에 고개를 묻었다. 폭주했구나. 나. 정말 당신이 싫어하는 짓을 했구나. 나 정말 괴물이 되었어? 카게야마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눈을 감았다. 눈을 뜨면 펼쳐질 그 광경이 두려웠다. 오이카와가 애써 가이딩으로 카게야마를 덮었다. 괜찮아. 기운은 다정했다. 당신처럼. 하지만


난 괴물인걸.


카게야마가 눈을 떴다. 온통 붉은 세상. 뒤집어진 사람들. 미칠 듯이 가득한 피비린내에, 카게야마는 더욱더 제 존재를 확신했다.



아 난, 사랑할 수 없어.




*


*

*




전선의 상황은 날이 갈수록 심각해졌다. 초커도 차지 않은 어린 센티넬을 내보낼 만큼. 카게야마가 고시키를 바라보다 입술을 깨물었다. 존경합니다! 멋모르는 어린 아이가 저를 향해 경례를 해왔다. 고시키의 가이드로 보이는 시라부가 카게야마에게 조용히 초커를 내밀었다. 긴급 상황이니, 빨리 진행하고, 전투에 배정하라는 명입니다. 시라부의 말에 오이카와가 미간을 찡그렸다. 가이드는 고시키라는 어린 센티넬보다는 나이가 많아 보이니, 초커가 어떤 역할인지 모르진 않을 텐데.



"저도 이제 임무를 맡게 되는 건가요?!!"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열여섯의 소년이 해맑게 제게 묻는다. 그래. 대답은 했지만 카게야마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어린 날, 제게 초커를 채우던 아비의 얼굴이 떠올랐다. 잔뜩 일그러져 있던 그 얼굴을. 카게야마가 입술을 깨물었다. 막사의 시선이 집중된다.


군복을 입은 아직 여린 몸이 눈에 들어왔다. 성인도 되지 않았잖아. 카게야마가 조심스레 고시키의 목에 초커를 둘렀다. 검은 초커는 어린 소년의 목을 억죄고 있었다. 그리고 카게야마가 억지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제, 이 나라의 자랑스러운 군인이 되는 거야."


"네!!"



고시키를 향해 카게야마가 쓰게 웃었다. 행복하기도 벅찰 나이. 하지만 우리에게 용납되지 않는 것. 행복, 카게야마가 초커의 잠금 장치를 걸었다. 이제 저는, 멋진 군인이 되는 겁니까? 어린 고시키의 말에 시라부가 고개를 돌리며 눈을 감았다. 카게야마도 일그러진 얼굴로 애써 환하게 웃었다. 응 그래,


찰칵- 채워진 초커에 불이 들어온다.



"이제 이 나라는 너를 환영해."


'이제 이 나라는 너를 환영해.'



아비의 목소리가 들린다. 제 수많은 피가 묻은 손으로 채워진 초커는, 또 다시 피를 부를 것이다. 카게야마가 저주스러운 제 몸을 바라보다 눈을 질끈 감았다. 고시키의 초커가 붉은 빛으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고시키가 아무것도 모르고 즐거운 듯 입을 열었다. 저도 이제 센티넬이 되는 건가요? 하지만. 이내 고시키가 괴로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시라부상 이거 뭐에요? 아파. 초커가 주는 고통에 피를 토하는 고시키의 모습. 그 모습에 얼굴을 일그러트린 카게야마가 귀를 막았다. 아파, 아파, 하지만 고시키의 비명소리는 두 손을 뚫고 카게야마의 귀에 또렷하게 박혔다. 눈물로 젖은 눈을 하늘로 들어 올린 카게야마가 도망치듯 막사를 나섰다. 오이카와가 카게야마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어디가."


"싸우러갑니다."


".............울고 있잖아."



오이카와가 눈물범벅이 된 카게야마의 얼굴을 보며 입을 열었다.



"죽이지 않고서는.."



제가 괴물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고서는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카게야마가 쓰게 웃었다. 카게야마가 날아오르려는 순간 오이카와가 카게야마의 손을 잡아 쥐었다. 가지마. 굳이 가지 않아도 되잖아. 임무도 따로 없잖아. 카게야마의 머리칼이 바람에 흔들렸다. 오이카와의 눈동자가 그런 카게야마를 마주한다. 이곳은 언제나 피 냄새가 흘렀다. 전장에 돌려진지도 어느새 4년째. 카게야마는 처음으로 눈물이 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과거의 저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열여섯의 어린아이가, 단지 센티넬로써 능력이 강하다고 전쟁에 보내지는 세상.


그게 옳은 건 아니잖아.


임무를 하면 그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제가 좀 더 열심히 하면, 사람들을 지켜주면 저와 같은 아이가 다시는 나타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은 현실과 달랐다. 쿠니미가 말했듯이.


'네가 그리 노력해도, 세상은 바뀌지 않잖아.'


센티넬은 아무리 노력해도, 센티넬일 뿐이었다.


목줄을 찬, 허울 좋은 짐승일 뿐. 전쟁이 나면, 가장 먼저 죽어도 상관없는 무기일 뿐이다. 하이에나처럼 시체를 뜯어먹고 사는 그런 짐승일 뿐이다.



"아니야."



오이카와가 일그러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런 말 하지마."



오이카와가 카게야마를 끌어안았다. 전장에 어울리지 않는 그의 싱그러운 기운이 퍼져나간다. 카게야마가 흐릿해진 눈으로 눈을 감았다. 오이카와가 입을 열었다.



"미안해."



'미워하지 마렴.'


그럼 소중할 수 있는 사람도 놓쳐버리고 만단다. 어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이카와가 눈을 감은 채 쓰게 웃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 스스로가 상처받은 카게야마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태어났을 때부터 차별받고, 숨기는 게 당연했던 소년에게 무어라 말해야할 지. 저는 그 모든 것을 가져놓고도, 어미에게 그런 말을 들어놓고도 누군가를 원망만 했으니까. 아니 너를 증오했으니까.


네가 잘못된 세상을 바꾸기 위해 네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을 때,


내가 기껏 한 건 원망하는 것 뿐, 세상의 잘못이라, 센티넬의 잘못이라 원망한 것 밖에 없었다.



"네가 왜 괴물이야."



오히려 괴물은 우리지. 센티넬을 마치 가축처럼 식별하고, 구분하고 차별하고 그럼으로써 만족하는 인간들. 감정이라는 것이 사라진 것 마냥 구는 카게야마의 모습에 오이카와가 입술을 깨물었다. 카게야마가 덤덤히 입을 열었다.



"많이들 제게 그렇게 말해요."



'괴물이면서.'



“괴물이라고.”



처음 본, 카게야마를 향해 제가 했던 말. 그 말을 떠올린 오이카와가 손에 힘을 푼다. 오이카와의 손에서 카게야마의 손이 스르르 빠져나간다. 괜찮아요. 괴물도 나름 나쁘진 않은 것 같아. 오이카와를 향해 카게야마가 환히 웃었다.







5.세계의 마지막






그 날 이후.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와 말을 일체 섞으려도, 전투가 끝나면 늘 잡던 오이카와의 손을 잡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가이드가 없이 전투를 지속한다면 센티넬의 몸에 무리가 간다. 그걸 분명 카게야마 스스로도 알고 있을 텐데도 카게야마는 오이카와를 피하기 바빴다. 오이카와가 한숨을 내쉬었다. 답답함에 오이카와가 가슴을 내리치자 눈치를 살피던 야하바가 입을 열었다.



"그거 아십니까? 전쟁 끝난다는 얘기가 있어요."


"에? 진짜?"


"요즘, 전투 뜸해졌지 않습니까?"



그러게. 오이카와가 차트를 정리하다 안경을 벗었다. 전쟁의 끝. 카게야마가 그리 괴로워했던 전쟁의 끝이라. 토비오를 찾아야겠어. 센티넬 말입니까? 야하바가 손을 들어 막사를 가리켰다. 아까 들어갔습니다. 고마워. 야하바에게 인사한 오이카와가 막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토비오쨩- 있어? 막사 너머로, 카게야마의 이름을 불렀지만 막사 안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없어? 오이카와가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카게야마를 닮아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는 막사 안. 오이카와가 아무 생각 없이 책상 쪽으로 몸을 옮겼다. 토비오쨩~, 대답이 없는 카게야마를 찾아 오이카와가 고개를 휘적거렸다. 없네. 오이카와가 카게야마가 어디로 갔는지 흔적이라도 찾기 위해 책상 위를 훑었다. 그리고 들어온 낡은 서류철 하나. 왠 기밀? 오이카와가 의아함에 암호로 적힌 서류를 넘겼다. 정부가 센티넬에게 기밀을 넘길 정도로 믿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오이카와가 종이를 넘겼다. 그리고 까맣게 적힌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D급 이상의 모든 센티넬을 폐기한다.]



“.........”



손톱이 살을 파고 들어간다. 오이카와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서류를 구겼다. 이거 뭐야. 어떤 미친 새끼야. 오이카와의 동공이 떨리기 시작했다. 설마. 설마. 휴전이라는 거, 센티넬들을 담보로 받아낸 건 아니지? 오이카와가 책상에 손을 내리쳤다. 아니 이딴 생각을 한 새끼가 있어? 오이카와가 입술을 깨물며 머리를 쓸어넘겼다. 그리고 문득, 무언가를 떠올렸다.


'더 이상 센티넬이 태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오이카와는 말을 내뱉었던 이를 알고 있었다. 센티넬을 소모품으로 생각했던 이를 알고 있었다. 그건 바로 자신. 초반 가이드가 되고 나서도 입버릇처럼 카게야마에게도 내뱉었던 말. 재빨리 오이카와가 막사를 나섰다. 그리고, 마치 꿈처럼 전쟁이 끝났다는 라디오가 울려퍼졌다. 오이카와가 이를 악물었다. 어디 있어. 카게야마. 제발. 환호하는 군인들. 축배를 드는 사람들. 정신없이 뛰고 있는 와중에도 또렷하게 들리는 라디오의 소리가 미칠 듯이 싫었다.


[센티넬의 군사적 사용 폐기를 조건으로, 전 세계는 휴전에 동의했습니다.]


군인들이 집에 갈 수 있다며 행복해했다. 야하바도 즐거운지 군인들 사이에 끼어 노래를 불렀다. 그래, 센티넬은 원래 그런 취급이었지. 아무것도 모를 땐 노래를 불렀을지도 몰랐다. 저들 사이에 끼어 맥주를 한잔 마셨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무리, 센티넬과 인간이 다르다고 한들 이게 같은 일이야? 마치, 아무런 감흥 없이 쓰레기 같은 사람이 죽는 것 마냥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동안 죽지 않고 버텨온 것이 모두, 센티넬의 공임에도. 사람들은 센티넬의 죽음에 기뻐했다. 그게 말이 돼? 기뻐해? 즐거워? 미쳐버릴 것 같아. 주먹을 꽉 쥔 오이카와가 카게야마를 찾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정신없이 뛰었다. 너를 찾아야 했다. 숨이 가빴다. 오이카와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카게야마의 눈동자를 닮은 푸르른 하늘이었다. 그 녀석은 알고 있었겠지. 그저 맞아 떨어진 걸지도 몰랐다. 처음엔 고시키가 초커를 차는 것이 괴로워서라고 생각했다. 저를 피하는 게 자괴감이 들어 그런 줄 알았다. 근데. 그게 아니었구나.


죽어야 한다는 걸, 카게야마는 알고 있었어.


오이카와가 뒤틀리는 속을 붙들었다.



"토비오짱."



병영의 한 구석, 오이카와의 목소리에 카게야마가 손에 쥔 시체를 털썩 놓았다. 그리고 얼굴이 일그러졌다. 피비린내가 가득했다. 이미 카게야마의 주위에는 시체들이 가득했다. 센티넬이었다. 아마 이 근방에 배치 받았을 센티넬들. 카게야마가 웃었다. 하지만 눈에는 이미 그렁그렁하게 눈물이 가득 차있었다. 오이카와가 입술을 깨물었다. 괴로워보였다. 끔찍하게 괴로워보였다. 고시키에게 초커를 채웠을 때 보다 더.



"왜 오셨어요."


".............."


"오이카와상은, 센티넬을 싫어하시잖아요."



바람에 카게야마의 머리가 흩날렸다. 이제 전쟁은 끝나요. 우리가 죽으면. 이 근방 센티넬들은 모두 죽였어요. 이제, 저만 죽으면 돼요. 웃으며 입을 여는 카게야마의 말에 오이카와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애써 덤덤하게 얘기하면서 왜, 얼굴은 눈물투성이야. 너. 오이카와가 피비린내에도 카게야마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카게야마가 비명을 질렀다.



"오지마세요. 제발."


"................"


"다정하게 대해주지 말란 말이야."



센티넬 싫어하면서. 동정하면서. 카게야마가 서럽게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 파란 눈동자에 오이카와가 담긴다. 그럼 내가 당신을 좋아하게 되잖아, 말을 삼킨 카게야마가 울음을 토해냈다. 차마 오이카와 본인에게 직접 전할 수는 없는 말. 초커의 불빛이 빨갛게 반짝인다. 이제, 저를 제외한 이 근방의 모든 센티넬들이 죽었다는 것이 정부로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 죽는 건 나의 차례. 서럽게 우는 카게야마를 향해 다가간 오이카와가 카게야마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그리고 수십 번이고, 수천 번이고 생각했던 말을 밖으로 꺼낸다.



"도망치자."



오이카와가 입을 열었다. 예상치 못한 말에 카게야마가 크게 눈을 뜬다.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면 거짓이다. 하지만. 카게야마가 쓰게 웃었다. 센티넬에게 현실은 각박하다. 사람들이 아무리 아무렇지 않다고 말한 들, 누군가는 센티넬들을 무시하고 차별할 것이다. 그리고 가이드인 당신에게도 그러겠지. 무슨 이유로 당신이 마음이 바뀌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른 센티넬들에 대한 혐오는 여전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건 알고 있어 나. 내가 당신에게 방해가 된다는 것. 전쟁에 어울리지 않는 싱그러운 당신에 기운에 홀려버릴 것 같다. 당신은 이 피투성이의 전쟁터와 어울리지 않아.


카게야마의 목에 걸린 초커가 삐삐-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카게야마가 오이카와의 얼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울지 마세요. 난 사람도 아닌데. 단지 카게야마 토비오라는 이름은 부모님이 붙여준 이름. 저는 H-31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존재. 그저 코드네임 H-31, 그게 제 이름이었다. 초커에 표시된 식별번호를 오이카와에게 보여주며 카게야마가 입을 열었다.



"전 인간이 아니에요.“


“....토비오. 제발.”


“잊어요. 저를.”



네가 왜 인간이 아니야. 오이카와가 오열하듯 대답했다. 새하얗게 질린 머리는 무언가를 생각하기 버거웠다. 그저 울고 싶었다. 오이카와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체념할 대로 체념해버린 카게야마의 모습에 가슴이 답답했다. 미쳐버릴 것 같아.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 너무나 답답했다. 이제 나는 네가 인간이라는 걸 깨닫기 시작했는데, 노력했던 네가 무너져 내리니, 더 미칠 노릇이었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아. 왜 슬픈지는 모르겠다. 내가 토비오를 좋아했었나. 몰라, 그냥. 네가 죽지 않았으면 했다. 오이카와가 서럽게 말을 내뱉었다. 도망치자. 제발. 토비오짱. 제게 오열하는 오이카와를 바라보던 카게야마가 눈을 감았다.



그 초커를 걸면. 사랑받는다고 생각해? 카게야마.


짐승이 목줄을 찬다고 해서 인간이 되나?


센티넬은 살인마랬어!!!



카게야마가 천천히 눈을 뜨며 웃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저는 괴물이잖아요."



오이카와가 몸을 멈추었다. 아 제발. 토비오. 오이카와가 울며 피범벅이 된 카게야마의 몸을 붙들었다. 하지만 카게야마는 눈물이 가득한 얼굴로 그저 웃을 뿐이었다.



"좋아했어요."



죄송해요. 괴물이라도 좋아할 수는 있는 거잖아.


카게야마의 말에 오이카와가 눈을 감았다. 뺨 사이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우리의 관계가 나아졌다고 생각했다. 나는 너에게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했어. 오이카와가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젠 누군가를 차별함으로써 인해 안전했던 제 몸이 미칠 듯이 혐오스러웠다. 네가 나아졌다 해봤자 너의 깊은 마음 속 자괴감까지 괜찮아진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왜 그렇게 말하면서. 우냔 말이야. 울지마. 오이카와가 아픈 제 가슴 한쪽을 내려쳤다. 답답했다. 이 와중에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더 괴로웠다.


네가 죽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들.



"네가 왜 괴물이야."


".................센티넬이니까요."



제어기의 불빛이 계속해서 반짝였다. 열여섯부터 네 목을 억죄어오던 이 목걸이는 무엇일까. 무엇이기에 이렇게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 걸까. 카게야마가 담담하게 눈을 감았다. 두 볼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너는 수많은 사람을 죽였겠지? 근데, 그리 만든 우리의 책임이 아닐까. 오이카와가 웃으며 카게야마의 목에 손을 올렸다. 카게야마가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날아가."



이제, 목줄을 차지 않아도 돼.


안돼요. 제어기를 풀면. 혹여나 오이카와에게 해라도 갈까, 새하얗게 질린 카게야마의 말을 자른 오이카와가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오이카와가 초커의 이음새를 붙들었다. 오이카와가 웃었다. 그리곤 툭하니 말을 내뱉었다.


나는 네가 살았으면 좋겠어.


오이카와의 말에 카게야마가 눈물이 가득한 눈을 껌뻑였다. 아. 카게야마가 슬퍼했다. 서럽게 울음을 토해냈다. 하지마. 나를 버리면 당신은 행복하잖아. 왜. 굳이 이런 길을 걸으려 해. 아름다운 파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오이카와가 카게야마의 뺨을 쓸어내렸다.



"아니야.“


“나 같은 거 버려요. 제발. 나 없이 행복하게 살아.”



오이카와가 카게야마의 이마에 작게 키스했다. 서럽게 우는 카게야마를 품에 안고 오이카와가 카게야마를 달랬다. 괜찮아. 있잖아. 토비오짱. 오이카와가 눈물 젖은 얼굴로 속삭였다.


나는 너로 인해 내 세계가 바뀌었어.



“그러니까.”



찰칵-


헐거워진 목에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카게야마가 오이카와를 올려다보았다. 파란 눈동자가, 마치 눈부신 하늘같았다. 미안해. 이제 나는.



“내 세계를 바꾸어준 너 없이 살 수가 없어.”



눈물 젖은 얼굴의 오이카와가 카게야마를 향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목줄이 없는 짐승이, 사랑했던 그대에게 씁니다.-외전







아카아시를 처음 본 건,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어느 날이었다. 아카아시는 여자아이처럼 여리하지도, 약해보이지도, 그렇다고 아름답게 생긴 것도 아니었다. 그냥. 단지 눈길이 갔었다. 그냥. 그게 마치 운명인 것처럼. 보쿠토가 눈을 껌뻑거렸다. 단정한 아카아시의 눈이 유려하게 휘어진다. 마치 벚꽃잎이 흩날리는 것 마냥. 눈이 부셨다. 아카아시가 입을 열었다.



"당신의 가이드가 될, 아카아시 케이지입니다."


"...아...안녕."



꽃 같다. 보쿠토가 저를 감싸는 기운을 느끼며 그리 생각했다. 차가운 겨울이 지난 따뜻한 봄에 가장 먼저 피는 꽃 같이 벅차고 아름다운 향. 보쿠토가 머뭇거리다 아카아시를 바라보았다. 대학생이랬지. 아카아시는. 아카아시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아. 예쁘다. 보쿠토가 웃었다. 이렇게 예쁜 사람이, 내 사람이구나. 보쿠토가 환하게 웃었다.



"나는 보쿠토 코타로야."



이젠 너의 센티넬이 될 사람이지.


그저 그 말 한마디가 부끄러워 보쿠토가 몸을 베베 꼬며 입을 열었다.




*



보쿠토는 아카아시를 사랑했다. 보쿠토는 마치 수줍은 새싹에게 꽃을 피워내라 부탁하는 따뜻한 햇살처럼, 아카아시의 마음을 열었다. 아카아시는 그런 보쿠토를 이해할 수 없었었다. 그렇지만 그 사랑이 대단하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저를 맹목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지. 그래서 저도 사랑을 하게 된 걸지도 모르지. 보쿠토는 마치 태양과도 같은 사람이었다.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제 기운을 나누어 주어 이내 마음을 돌리게 하는, 그렇게 따뜻한 사람. 아카아시가 제 다리를 베고 누운 보쿠토의 머리를 쓸어넘기며 슬며시 웃었다. 그런 보쿠토의 품에는 어린 카게야마가 품 안에 안겨 있었다.



"아카아시상! 보쿠토상 자요!"


"쉿. 조용히."



아카아시의 말에 아직 오동통한 젖살이 남은 카게야마가 손가락을 올리며 아카아시의 말을 따라한다. 쉿. 카게야마가 눈을 껌뻑거리며 보쿠토의 품안에 파고든다. 어제 임무가 조금 고단했으니까. 보쿠토의 머리를 쓸어 넘기던 아카아시가 쓰게 웃었다. 어제도 구해주고 욕을 먹었었지. 센티넬의 인권은 갈수록 낮아졌다.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센티넬들을 부려먹는 건 당연해지니까. 카게야마도, 보쿠토처럼 될까. 아카아시가 보쿠토의 목에 걸린 초커에 손을 올렸다. 이걸 착용하고부터, 차별이 심해졌지.



"자유롭게 해드리고 싶어요."



아카아시가 웃었다. 눈동자에 맺힌 서글픈 슬픔이 맺혀 떨어진다. 저 어린 아이가, 똑같은 일을 겪지 않도록, 아니면 적어도 당신만은 자유로울 수 있게 해주고 싶다. 아카아시가 보쿠토의 손을 들어올렸다. 내가 아픈 건 괜찮아요. 아카아시는 센터 내 센티넬들을 아꼈다. 아직 초커도 착용하지 못한 카게야마도, 보쿠토도, 쿠로오와 코즈메도. 다 제 사람이라 여겼다. 세상에 알려진 센티넬들과는 달리 아카아시가 아는 센티넬들은 더 없이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세상은 아름다웠다. 푸르디 푸른 하늘, 하얀 구름. 파릇히 자라나는 나무들. 하지만, 센티넬들이 살기엔 아름답지 않은 세상. 아카아시가 환하게 웃었다.



"언젠간, 그런 세상이 오기를."




*




“아카아시. 숨길 생각하지 마.”


“아니야 그런 거.”



근데 왜 그 정치인이랑 따로 만난거야. 코즈메의 눈동자가 아카아시를 바라본다. 아카아시가 손을 내저으며 부정하다 코즈메의 눈길에 이내 고개를 숙였다. 한참의 침묵 끝에 아카아시가 긍정했다. 맞아. 사실. 아카아시가 센터 내 구석 벤치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게임을 종료한 코즈메가 쓰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보쿠토상은 알고 있어? 코즈메의 입에서 나온 보쿠토의 이름에 아카아시가 그저 웃었다. 제 가이딩은 조금 특이했다. 센티넬이 아닌 일반인들에게 가이딩을 하면 신체가 조금 젊어진다.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카아시.”


“........”


“아카아시 혼자서 짊어지려고 하지마, 보쿠토상도, 쿠로도, 코노하도, 센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아카아시를 좋아해.”


“알아. 하지만.”



어제, 처음을 정치인에게 넘겼다. 가이딩의 기본은 신체 접촉. 아카아시가 숨을 삼켰다. 더러워. 내 몸. 제 몸을 만지던 남자가 생각나 아카아시가 헛구역질을 토해냈다. 보쿠토상에게 주고 싶었는데. 아카아시가 눈을 감았다. 서러움이 밀려드는 것을 보아하니, 나 울고 싶다보다. 아카아시가 땅바닥에 떨어지는 눈물방울들을 바라보다 허탈하게 입을 열었다.



“조금 더 행복했으면 좋겠어.”


“.........”


“보쿠토상도, 너도, 모두들.”



행복했으면 좋겠어.


그래서 그런 거야. 제 한 몸 굴리면 다들 행복해 하니까. 아니 조금이지만 더 나은 삶을 사니까. 그래도 인간답게 살 수는 있으니까. 아무도 그들이 인간이라고 믿어주지 않았다. 그래도 제게 센티넬은 모두 인간이다. 행복해하고, 슬퍼하고 사랑할 줄 아는 인간. 그런 그들을 그저 자신들이 행복하기 위해 낮게 취급하고 차별하는 걸 바꿀 자신이 없어서 이렇게라도 하면 마음이 편했다. 어쩌면 세계를 바꿀 수는 없는 내 이기심일지도 모르지. 아카아시가 코즈메의 목에 차인 초커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거 풀어주고 싶었거든.”



울음이 가득한 얼굴로 아카아시가 웃었다. 코즈메가 아무 말 없이 아카아시의 몸을 끌어안았다. 울지마. 아카아시가 덤덤히 눈물을 흘렸다.



‘아카아시 나 말이야.’



초커를 차면 사랑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보쿠토의 목소리가 아카아시에게 웅웅 울려 퍼졌다.



‘근데 거짓말처럼 아카아시가 나에게 왔어.’




그러니까, 나 이거 계속 차고 있어도 돼.


아카아시가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는 그리 말하곤 했다. 하지만 아카아시는 괴로웠다. 미안하고, 미안했다. 그 목줄을 채운 인간이라는 것에 제가 포함되어있기에. 눈물을 닦아낸 아카아시가 입을 열었다.



“보쿠토상에게는 비밀로 해줘. 코즈메.”


“............아카아시.”


“제발.”



알았어. 하지만 이제 그런 곳에 나가지마. 약속해. 코즈메가 속삭이자 아카아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하지만,


사람의 욕심은 언제나 끝이 없는 법이었다.




*

*

*



보쿠토는 목줄을 찬 삶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센티넬이란게 본디 인간 취급 받긴 힘든 인간이었으니. 그래서 목줄을 차서, 인간의 짐승이 되면 아카아시와, 센터 사람들과 같이 살 수 있으니까. 무시당하는 것쯤이야, 참을 수 있었다. 보쿠토가 일그러진 얼굴로 쓰러진 아카아시의 앞에 앉아 있었다. 코노하가 입을 열었다. 보쿠토- 하지만 보쿠토는 대답이 없었다. 아카아시가 파리한 안색으로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벚꽃이 만개했던 기운이 차츰, 차츰 시들어가는 나무 같았다. 왜 그러지. 그냥, 피곤해서라고 생각했는데. 도저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보쿠토가 입술을 깨물었다.



"...........말하지 않은 건 미안해. 아카아시가 너무 부탁을 해서."


"아카아시가 나 몰래 무언가를 하고 있던 거지. 코노하."



황금색의 눈동자가 슬픔에 젖어 있었다. 하얗게 질린 아카아시가 고통에 신음하고 있었다. 왜, 제가 아카아시의 고통을 덜어주지 못하는 거지? 보쿠토는 차라리 제가 가이드이고 아카아시가 센티넬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 삶은 아카아시가 있어 조금 더 윤택해졌지만, 제가 아카아시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없잖아. 아무리 힘든 임무를 해도 아카아시가 웃어주면 행복했는데. 제가 이렇게 아픈 아카아시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서, 괴로움에 보쿠토가 얼굴을 아카아시의 손에 묻었다.



"아카아시가 말하고 싶지 않아하는 것 같아서, 물어보지 않았어."


"........보쿠토."



아마, 네가 생각하는 게 맞을 거야.


코노하의 말에 보쿠토가 눈을 감았다. 아카아시의 특이한 가이딩 때문이구나. 아카아시의 가이딩은 센티넬이 아닌 대상에게 시간의 회복을 선사했다. 즉 젊어지게 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던 아카아시의 능력. 그래서 보쿠토는 아카아시를 백방으로 숨기기 위해 노력했다. 단순히 센티넬들을 도구처럼 다루기 위해 인권을 격하시킨 그들을 알기에. 하지만 제가 아는 세계는 조금 더 지독했던 모양이다. 얼굴을 쓸어내린 보쿠토가 속에서 솟아오르는 괴로움에 버틸 수 없어 가슴을 퍽퍽 쳐 내렸다. 아카아시. 아프지마. 제발. 서럽게 울음을 토해냈다. 그렇게 한참을 울던 보쿠토의 뺨에 누군가의 손이 올라왔다.



"보..쿠토상."



아카아시가 손을 들어올렸다. 하얗게 질려 있었다. 피어나던 봄 같던 너의 기운이. 파들하게 말라 있었다. 아카아시가 웃고 있었다. 보쿠토는 눈물이 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카아시. 힘들잖아. 가만히 있어. 아카아시가 보쿠토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마치 소중한 것을 어루만지는 것 마냥.



"미워하지 마세요."



아카아시가 눈물 젖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세상을 미워하지 말아요. 제발. 저는 괜찮으니까.



"뭐가 괜찮아? 아카아시."


"..보쿠토상."


"아카아시가 이렇게 되어버리는 세상이 뭐가 괜찮아? 아카아시. 응? 뭐를 미워하지 마?"



아카아시가 내 가이드가 아니었다면, 아카이시는 행복하게 살 수도 있었잖아. 보쿠토가 눈물 젖은 얼굴로 아카아시를 끌어안았다. 아프지마. 내 사랑. 제발. 나랑 행복하게 살아줘. 아카아시가 쓰게 웃었다. 창백하게 질려가는 아카아시의 손이, 흩날리던 벚꽃 같던 아카아시의 기운이. 흐릿해진다. 보쿠토가 오열하며 입을 열었다.



"내가 짐승 취급을 당해도 좋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임무를 나가도 괜찮아. 내가 죽어도 괜찮아. 욕을 먹어도 괜찮아. 싸늘해져가는 아카아시를 안은 보쿠토가 괴롭게 소리쳤다.


제발 내게서 아카아시를 뺏어가지는 말아줘.



"미안해요."



이런 당신을 두고 가서 미안해. 울부짖는 보쿠토의 눈을 어루만지던 아카아시가 환하게 웃었다. 마지막 온힘을 다해 피어나려는 꽃처럼. 시들었던 기운이 아카아시를 처음 만난 날, 그때처럼 향기롭게 피어난다. 아카아시가 입을 연다. 보쿠토가 듣고 싶어 했던 말.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매일 매일, 해줄걸. 아카아시가 안타까움에 웃음을 지었다.



"사랑해요."



정말, 사랑했어요.



그리고.


고요히 아카아시가 눈을 감았다. 아카아시가 내었던 봄 같은 기운이. 사라진다. 툭. 하고 떨어지는 아카아시의 손에 보쿠토가 멍하니 제 품 안의 아카아시를 바라본다. 아카아시. 아카아시. 보쿠토가 아카아시의 이름을 불렀다. 아카아시는 웃고 있었다. 하지만 숨은 멎어있었다.



"아카아시. 아카아시. 일어나봐."


"..............."


"오늘 봄이야."



우리 같이 벚꽃 보러 가기로 했잖아. 보쿠토가 입술을 깨물었다. 아카아시에게 사랑을 노래하던 보쿠토가 울고 있었다. 서럽게 울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너를 만난 아름다운 봄이잖아. 보쿠토가 아직 온기가 남은 아카아시의 이마에 제 이마를 맞대고 울부짖었다. 고요히 잠든 아카아시의 얼굴에 보쿠토의 눈물이 떨어진다. 아. 괴로워. 괴로워. 너무나 미쳐버릴 것 같아.



"너를 만났던 봄이야, 아카아시."



보고 싶을 거야. 사랑하는 케이지.


희미하게 웃는 얼굴로 잠든 아카아시의 이마에 입 맞춘 보쿠토가 애써, 눈물 젖은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


*

*




".........미안하네! 당장 센티넬에 대한!!!"


"..........."


"아아아악!!!!!!!!"



정치인의 머리를 터트린 보쿠토가 눈을 감았다. 더러운 피가 볼에 튄다. 미안해? 하지만 죽어버린 정치인은 보쿠토에게 입을 열수가 없었다. 온통 피로 가득한 의회의 모습에 보쿠토가 웃음을 터트렸다. 아카아시의 생명을 집어삼킨 사람들은 놀랄 만큼 젊어보였다. 행복할까. 고작 그 젊음에 아카아시를 짓밟아야했나. 흉흉한 안광의 보쿠토가 검은 군복을 입은 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보쿠토의 목에는 초커가 착용되어있었다.


이 초커를 차면 행복할 줄 알았다. 인간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생각했다.


보쿠토가 손에 묻은 피에 헛웃음을 토해냈다. 피비린내가 가득했다. 경찰과 군인 병력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무서운 거야? 무서워서, 우릴 그렇게 짓밟았나. 보쿠토가 눈을 뜨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행복했을까? 그들은. 우리가 차별받음으로써 세워진 이 세계에서 행복했나. 센티넬은 사랑을 할 줄 알았다. 센티넬도 슬퍼할 줄 알았다. 우리에게는 가이드를 잃은 슬픔에 괴로워하는 것도 허락되지 않은 걸까. 짐승에게는? 초커가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의회를 습격한 게 저라는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지랄 같은 놈들. 보쿠토가 피 묻은 손으로 초커를 잡았다.



"아카아시, 미안해."



센티넬이 죽어나가면서, 차별당하면서 만들어진 세계는 아름다운 세계였다. 그러나 정작 센티넬에게는 관대하지 않은 세계. 그리고 그 세계는 아카아시가 용서하라 했던 세계. 하지만. 나.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아. 아카아시를 그렇게 만든 이 세계를.



서글픈 얼굴의 보쿠토가 목에 쥐어진 초커를 뜯어냈다. 목줄을 찬 짐승은, 더 이상 사랑을 할 수가 없었다.






*




[G-198번, 명칭 코즈메 켄마 폐기]

[G-201번, 명칭 보쿠토 코타로 폐기]



-



[전쟁 중 센티넬 전사자 총 2341명 중 명령에 의한 폐기 총 2031명]

[센티넬을 잃은 가이드 중, 자살자 총 1989명]


-


[H-24, 명칭 쿠니미 아키라 폐기]

[G-199, 명칭 고시키 츠토무 폐기]

[마지막 센티넬 H-31, 명칭 카게야마 토비오 폐기]



-


[센티넬 H,G,F,D급 생존자 0명]
















목줄을 찬 짐승의 세계

The world of beasts with collar


-moCnancci







못난씨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